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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ul 31. 2017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아침 출근길,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수많은 차가 지나가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수십대의 차가 경적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위험천만한 길 위를 지나면서도

아이의 얼굴엔 어떠한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길, 안전한 그 길 위에서
나는 눈을 감고 몇 발자국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저녁 퇴근길 공원을 지나가는데 문득 아침에 본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다.

앞이 안 보이는 그 아이가 느끼는 세상은 어떨지 궁금해 눈을 감고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보았다.
한발 두발 조금씩 내디딘 걸음은 조금씩 느려져갔고, 열 발자국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 어떠한 위험도 없는 넓은 길 그리고 매일 내가 오가던 익숙한 그 길
심지어 방금 전까지 내 눈으로 안전함을 확인한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남들은 벌써 저 멀리 날아오르고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
불확실한 미래 속에 한없이 작아져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그 위험한 찻길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걷는데

왜 난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멈춰 섰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알았다.

그 아이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었던 것은 엄마의 손이라는 것을
나를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엄마에 대한 믿음이

가장 안전한 길을 홀로 걷던 나보다 더 담대하고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청년의 때를 뒤돌아보면 불안함과 걱정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건지
혹시 잘못된 길로 들어가 너무 멀리 돌아가게 되면 어떡할지


불확실한 미래 속에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은 이렇게 초라한데 
다른 누군가는 벌써 저 멀리 날아오르고 있는 것만 같아 두려움에 휩싸일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가 보다 중요한 건 
 누구의 손을 붙잡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가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면 그 아이가 잡은 손을 기억한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가 보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의 한계보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얼마나 안전하고 익숙한 곳 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내 손이 누구에게 붙들려있는가라는 것을


그분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평안을 누리기에 충분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그분의 손이 나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안전한 길로 이끌 것이라고 믿을 때

내가 처한 상황을, 내가 가진 한계를 고민하기보다 그분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을 전적으로 믿을 때

그분의 손에 붙들려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평안을 누리기에 충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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