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배기 아들과 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작은 나무집을 짓기 시작한다.
커다란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하고 집을 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킨다.
아들에게 못을 가져오게 하거나, 작은 나무 조각들을 나르게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게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집이 완성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이에게 말한다.
"우리가 함께 집을 만들었어"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집을 바라보며 한껏 부풀어 오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뻐한다.
가끔 그런 질문을 해본다. 왜 이미 답이 정해진 길 위에서
그 답을 우리를 통해서 발견하시길 원할까?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아버지에게 아들은 집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었을까?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아들은 불편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아버지는 아이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며 함께 집을 지었을까?
어쩌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집을 완성한 뒤 누리는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끔은 의문이 들었다. 전지전능한 그분이 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지
우리의 도움 없이 그분의 계획을 직접 이루실 수 없는 것인지
이미 답이 정해진 길이라면 왜 우리를 통해 그 정해진 답을 발견하길 원하시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이런저런 수많은 질문들을 내뱉게 된다.
그분은 나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동일한 기적을 만들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나를 기적의 현장에 동참하게 하고 싶은 듯하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4대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오병이어라 불리는 기적의 사건이 있다.
갈릴리호 빈들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왔다.
저녁시간이 되어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있는 도시락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예수님께서 음식에 축사하고 제자들이 떡을 나누자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과연 아이가 도시락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의 밑거름이 된 재료가 없었더라면
호숫가에 모인 오천명의 사람들은 그 기적을 목격할 수 없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이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동일하게 일으키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가 내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사용하셨을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아이에게 예수님이 보이시는 기적의 현장에 동참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기적의 순간과 역사의 현장을 동참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하는 것
어쩌면 그분이 나에게 주고 싶었던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삶 속에서 그분의 계획하심을 그저 지켜보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과 역사에 동참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을 온전히 함께 누리게 하는 것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자신의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그분이
그분의 계획하심과 역사를 함께 이뤘다는 감격을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으셨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