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로 Oct 10. 2017

나의 이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때는 그랬다.

하루라도 지옥 같은 시간을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고,
잠시라도 고통스러운 시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와의 모든 기억을 지워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을, 그를 쉽게 잊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가라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라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그를 지워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잊기 위해서는 그와의 추억을 나쁜 기억으로 치부해야 했고,
그를 나쁜 사람이라, 한없이 부족했던 사람이라 평해야 했으며,

그와의 시간을 인생에 보잘것없고 의미 없는 순간이라 정의해야 했다.


그것이 이별을 극복하는, 그를 지워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고,

그것이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버텨보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내 사랑의 마지막을 들판에 버려진 꽃잎처럼 짓밟을 순 없으니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고 싶었다.
지옥 같은 하루가 나를 에워싸고, 들려오는 소문들이 나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고

그가 오려내 버린 추억이,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난 내 사랑에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결국 그 마지막 사랑까지 허락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의미 없는 발버둥이라며 모두가 나를 비웃었지만

내 사랑의 마지막을 나조차 들판에 버려진 꽃잎처럼 짓밟을 순 없었으니까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해
의지로 지켜내는 거라던 그 약속을 지켰으니까


그렇게 버려진 내 초라한 사랑의 끝을, 비루하고 남루한 내 사랑의 마지막을,

홀로 남겨진 가여운 내 감정의 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난 내 사랑 앞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해 의지로 지켜내는 거라던 그 약속을 지켰으니까

나의 20대 마지막 사랑을 부끄럽지 않게 기억할 수 있으니까

내가 꿈꿨던 사랑, 약속한 사랑의 모습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으니까


초라해도 괜찮다. 비참해도 괜찮다.
나는 사랑 앞에 최선을 다했고, 나의 이별은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그때의 고통은, 비참함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내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초라했지만 그 초라한 사랑이 부끄럽지는 않다.


초라해도 괜찮다. 비참해도 괜찮다.

나의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면, 나의 사랑의 끝을 지켜내려 노력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난 또 다른 사랑 앞에서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난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나는 사랑 앞에 최선을 다했고, 나의 이별은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이라 쓰고 운명이라 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