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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Sep 12. 2017

우연이라 쓰고 운명이라 읽다

그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를 언제부터 사랑하게 된 건지

그 시점과 계기가 분명치는 않다.

그냥 수많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시간들이 겹치고 겹쳐

나도 모르는 순간부터 내 마음속 한가운데 너무 큰 사람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수많은 우연의 반복이 그와의 인연을 만들어 냈기에,
그와의 인연을 신이 허락한 선물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대단해 보이는 사랑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인연도

그 시작은 우연이라는 단어의 반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의 다른 선택도, 작은 행동변화도 그와 내가 이어질 수 없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날 그곳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곳을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말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그와의 관계는 시작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연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선택이 그와 나의 인연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와의 인연을 신이 허락한 선물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그와의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기 위해
끝없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했다.


그 인연의 시작점이 우연이라는 단어에 속해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와의 인연을, 관계의 깊이를, 애틋한 마음을 우연이라는 단어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소중한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와의 우연이 운명이 되고 그 깊이를 더해가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했다.

그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그가 기쁠 때 함께 즐거워하고, 그의 고민을 함께 나눠 들고,

그가 슬퍼할 때 함께 울었던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었다.


크로노스의 물리적 시간을 카이로스의 특별한 순간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나의 의지에 달린 문제였다.


그리스 신화에 시간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나온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물리적, 수평적 시간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의 개념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논리적, 수직적 시간으로 순간을 의미한다.

특정 감정을 느끼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크로노스라는 흐르는 시간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바꿀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크로노스의 시간 흐름을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와의 사랑은 크로노스의 흐르는 시간 속 우연으로 시작해
카이로스의 시간 속 운명의 사람으로 바꾸고자 했던
간절함이 더해져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과의 인연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스치는 우연이라는 수평적 관계들 속에서

그를 내 곁에 머물게 하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카이로스의 시간 속 운명으로 바뀌었던 것은 아닐까?


인연, 어쩌면 그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의 신의 선물에

운명으로 바꾸고자 했던 나의 의지, 그를 향한 간절함이 더해져 만들어낸

기적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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