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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Nov 09. 2017

기억의 조각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다 지운 줄 알았는데
불현듯 흩어진 기억의 한 조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다 지운 줄 알았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나도 모르게 그를 그려내 버릴 때가 있다.


그와 같이 걷던 길을 마주할 때, 그와 함께 듣던 노래가 흘러나올 때
그와 같이 나눈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 그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할 때


잊혔던 그와의 기억이, 지워졌던 그와의 시간이 다시 되살아난다.
어떻게 지운 기억인데, 어떻게 견뎌온 시간인데
무도 잔인 작은 기억의 한 조각은 어느새 잊었던 많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기억들을 추억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데, 아 다시 꺼내어 보기에는 두려움이 앞서는데
그런 내 마음, 내 감정,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억의 조각들은 어느새 그를 그려내 버렸다.


분명 함께했던 순간인데, 함께했던 기억인데
이제는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아 그 시간 속을 헤매고 있다.


되살아난 기억에, 선명해져 버린 그의 모습에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내가 미워질 때가 있다.

분명 함께했던 시간인데, 함했던 순간인데 이제는 나만의 기억으로만 남은 것 같아

나에게만 잊지 못할 기억이 된 것 같아, 아직도 나 혼자 그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아

그런 한심한 나를,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괜스레 원망해본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얼마나 더 많은 기억들이 더해져야
그와의 시간을, 그와의 기억을 온전히 지워낼 수 있을지
그런 의미 없는 생각들로 발버 치며 기억의 조각들을 흐트러트려본다.


언젠가 그때의 기억을 추억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시린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또 한 번의 꽃을 피울 용기가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이제는 돌아갈  없는 때를, 너무 멀리 와버린 그 길을
이제는 어쩔  없는 그날, 돌릴 수 없는 시간을 가슴에 묻고
그저 그와의 인연 거기까지였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언젠가는 그때의 기억을 덤덤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시린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또 한 번의 꽃을 피울 용기가 생기기를
오늘의 아픈 기억의 조각들이 언젠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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