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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un 26. 2017

꿈을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어릴 적부터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익숙해져 있다.

꿈, 장래희망, 비전 등 다양한 이름의 형태로

주변 사람들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결정짓고 살아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받아왔다.    


우린 '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강요받아왔다.


꿈을 묻는 질문에 명확히 대답하는 아이는 목표가 뚜렷한 아이, 꿈이 있는 아이, 성숙한 아이로 인정받으며

그렇지 못한 아이는 미성숙하고 철없는 아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매년 기입해야만 했고,

만약 그 꿈이 바뀌었다면 합당한 이유로 설명해야만 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난 나의 꿈이 무엇이라 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어릴 적 내가 꿈이라 말했던 모습 그대로 지금의 나는 되어 있는 걸까?    

꿈이 있어야만 성숙한 아이일까?

꿈을 직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의해야 할까?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만 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슬픈 이와 함께 울어주는 빗줄기가 되고 싶은,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되어 모든 구속을, 나쁜 기억을, 사랑한 일도 이별한 일도 다 잊고 싶다는 

한 시인과 같은 꿈을 꿀 순 없는 것일까?    

꿈을 강요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꿈을 정형화시키려는 사회의 질문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꿈을 꾸려하지 않고 만들기 시작한 건 아닐까?


오늘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하나의 꽃이 되고 싶다는 꿈

내일은 슬픈 이와 함께 울어주는 작은 빗줄기가 되고 싶다는 꿈 

그런 꿈을 꾸며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오늘은 이런 꿈,

내일은 저런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꿈을 좇아 걸어가다 길을 잘못 들어도 

그곳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 새로운 꿈을 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가가 아닌 오늘은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수많은 질문들을 소리 없이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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