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통제
인간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 부자로서 삶을 지속하다 보면 부동산은 단순히 차익을 남기는 투자 수단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의 통제권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누구나 젊은 시절 타인의 공간에 머물며 겪었던 수치스러운 기억 하나쯤은 품고 살기 마련이다. 월세 계약이 끝나는 날 예고 없이 들이닥친 집주인의 무례함이나, 자신이 베푸는 호의로 인해 당신이 집을 얻었다고 훈수 두는 매도인의 거만함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불쾌한 조우는 역설적으로 ‘온전한 내 공간’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낳는다.
2013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지나던 시절, 누군가는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누군가는 영혼의 끝까지 끌어모은 레버리지로 생애 첫 집을 장만했던 선택 역시 그 근저에는 2년마다 밀려나야 했던 유목민적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공간 통제권에 대한 선언이 있었다.
통제권을 손에 넣은 인간은 비로소 숙면을 취하며 세상과 타인을 향한 생산적인 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공간의 소유가 인간의 시각을 완전히 바꾼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그토록 혐오했던 집주인의 거만함이 자산을 소유한 후의 내 모습 속에서도 발견되는 순간을 목격하며 우리는 깨닫는다. 인간의 본성은 소유의 유무에 따라 얼마나 쉽게 변주되는지를 말이다. 이러한 인지는 타인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장시킨다. 소유권과 그저 머무르는 것의 차이를 인지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간극은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지며, 공간의 소유가 주는 내면의 호응은 단순한 수익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부의 축적에 따라 공간의 가치도 진화한다. 첫 집이 안정적인 보금자리였다면 두 번째 집은 자산의 증식과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고, 이제 다가올 세 번째 공간은 고즈넉함과 여유라는 질적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한강변의 화려함보다는 산책할 수 있는 길과 넓은 서재, 요가룸 같은 개인적 충만함이 우선순위가 되는 변화는 필연적이다. 인생의 마지막 공간은 아마도 아파트라는 효율적인 감옥을 벗어나 마당이 있고 차고에서 내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단독주택이 될 것이다. 이는 나이가 듦에 따라 찾아오는 불현듯한 불안을 해소해 주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방어선이다. 시간은 통제할 수 없으나 공간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노년의 존엄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욕망은 거시적인 시장의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해괴망측한 규제와 세금을 만들어내도 공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소유욕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을 무시한 모든 억제책은 반드시 시장의 왜곡을 낳고,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목격한 기현상들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인위적으로 막아 세운 부작용의 결과물이다. 시장의 왜곡이 사라지고 가격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 즉 타인의 성장에 대한 시기심을 지나 누구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집 장만에 충실할 수 있는 시대가 올 때 비로소 공간은 적정한 가치를 찾아갈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며, 필자는 그 시기가 향후 10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결국 공간의 통제를 부자의 필수 조건으로 꼽는 이유는 명확하다. 집값의 상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부자의 마인드셋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쾌적한 동네에서의 삶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를 제공한다.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세상의 풍파로부터 나를 보호할 성벽을 쌓는 일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의 문법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이를 속물적이라 비난할 수 있으나 언젠가는 모두가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내 인생의 주인 또한 결정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