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시즌 1: 폐업의 문턱

by 에르네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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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바깥 날씨는 맑았지만 이나라 대통령의 얼굴은 흐렸다. 대통령 관저에서 갓 도착한 그는 아침 회의도 생략한 채 정책의 비서실장을 불렀다.

잠시 후, 회색 수트 차림의 실장이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서류철이 하나 들려 있었고, 이미 뭔가 예감하고 있었다.

“실장, 지금 내 친구가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다는 말을 했어. 이게 정상인가?”

정책의 실장은 서류를 펼쳤다. “예측된 결과입니다, 대통령님. 실제로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코로나 이후 대출로 연명해왔고, 연체율은 작년부터 폭등하고 있습니다. 그중 음식업은 가장 취약합니다.”

“그 친구, 두리서 말이야. 하나치킨 종로점 사장이야. 여고 동창이었지.”

정책의는 일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의 사적 인연이 업무에 개입될 가능성은 늘 위험이었다. 하지만 이나라 대통령은 정치적 연민이 아닌,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책자금을 받아 버텼어.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고, 폐업을 하면 대출금 전액을 바로 상환해야 해. 문 닫으라는 건가? 죽으라는 건가?”

정책의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정책자금은 유예 가능성과 조건부 감면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신속 지급’이 우선이었기에 정책설계가 단순화됐고, 금융기관들은 정산을 명확히 요구했죠.”

이나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대출받은 자영업자 중 폐업하고 싶은 사람은 몇 명이야?”

정책의는 페이지를 넘겨 보였다.
“2023년 말 기준, 1년 이상 연체자 비율은 8.9%, 2년 연속 적자 보고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의 41.6%입니다. 현재 폐업 희망 신고자는 51만 2천여 명. 문제는 그중 실제 폐업한 자는 27%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이 ‘폐업 후 생계’가 막막해 그냥 영업을 유지 중입니다.”

이나라는 말없이 서류를 바라봤다. 그러곤 조용히 말했다.
“그게 ‘정책 실패’라는 걸 인정하자, 실장.”

정책의는 한 박자 멈췄다. 이 대통령은 본질을 찌르는 순간, 그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곤 했다.

“그러면,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폐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해. 연착륙. 그냥 ‘장사 망한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삶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정책의는 책상 위에 새 자료를 꺼내 올렸다.
“이미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이 하나 있습니다. ‘소상공인 구조 전환 지원법’. 하지만 보수 언론과 재정당국에서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반대 중입니다.”

이나라는 정색했다.
“내가 본 ‘해이’는 생계가 끊긴 후에도 웃으며 치킨을 튀기는 친구의 표정이야. 진짜 해이는 대출 떼일까봐 폐업도 못 하게 하는 시스템이지.”

정책의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 정책의 핵심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이나라는 손가락을 들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하나. 폐업자에 대한 조건부 원금 감면.
둘. 전직 지원 프로그램 확대.
셋. 폐업 컨설팅과 고용연계.
넷. 프랜차이즈 본사의 책임 분담.
다섯. 정리 후 생계 유지를 위한 최소소득 안전망.”

정책의는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원금 감면은 ‘부실 조장’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부로 설계한다면—예: 2년 연속 적자, 연체 6개월 이상, 미성년 자녀 부양 가구—일정 기준 이상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사 책임은 꼭 포함해야 해.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위기 때 가격 인상만 지시하지, 리스크 분담은 안 해.”

“맞습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맹본부의 재난기여 의무 조항을 신설하면, 적어도 중견 이상 브랜드에는 의무기부나 수익 일부 재투자 가능성은 열립니다.”

이나라는 다가앉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근데 이걸 발표하면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까?”

정책의는 천천히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청년창업단체는 환영하겠지만, 언론 일부와 재정당국은 반대할 것입니다. 야당은 오히려 본사 규제 강화에 찬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프레임입니다.”

“프레임?”

“‘실패한 자영업자 지원’이 아니라, ‘전환과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정책. 일종의 구조 전환 트램펄린 같은 이미지로 포장해야 합니다.”

이나라는 책상에서 일어섰다.
“좋아. 이건 ‘폐업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재시작을 위한 정책’이야.”

정책의는 일어나는 대통령을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내일 새벽까지 완성본 보고서로 제출하겠습니다.”

이나라는 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그냥 발표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살리는 거야.”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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