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폐업의 문턱
청와대 정책조정회의실, 오전 7시 30분.
회색빛 커튼 사이로 새벽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 회의실 안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나라 대통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녀 앞에는 얇은 프린트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책상 주위로 정책의 비서실장과 중기부 차관, 경제수석, 국정홍보비서관, 법무비서관이 반원형으로 앉아 있었다.
침묵을 깨며, 정책의 실장이 일어섰다. 손에는 태블릿과 검정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대통령님, 그리고 여러분. 오늘 상정드릴 안건은 ‘자영업자 연착륙 전환법’입니다.”
그는 태블릿을 가볍게 터치했고, 벽면에 장표가 떴다. 다섯 개의 키워드가 큼직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첫째, 조건부 대출 원금 감면.
둘째, 장기상환 및 이자 유예.
셋째, 직업 전환 훈련과 컨설팅 패키지.
넷째, 프랜차이즈 본사의 책임 연계.
다섯째, 폐업 이후 생계 안전망 구축입니다.”
정책의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정책은 단순히 돈을 주는 지원책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을 위한 시스템입니다.
미국의 SBA(중소기업청), 독일의 구조개편 인큐베이팅 모델, 일본의 폐업 연착륙 패키지 등을 참조해 설계했습니다.”
이나라는 장표를 조용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정책의 실장, 왜 ‘폐업 지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연착륙’이란 말을 썼나?”
“그것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국민 정서를 고려한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폐업’은 끝처럼 느껴지지만, ‘연착륙’은 다음 도약을 위한 착지입니다.”
중기부 차관이 손을 들었다.
“실장님, 원금 감면은 여론상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가피합니다. 잘못된 경영에 정부가 보증을 선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책의는 정면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래서 조건부입니다. 연체 6개월 이상, 2년 이상 적자, 부양가족을 둔 생계형 사업자.
이들을 그냥 ‘실패한 자영업자’로 방치하면, 그 비용이 더 큽니다.”
경제수석이 말을 이었다.
“그럼 총 예산은 얼마나 듭니까?”
정책의는 곧바로 답했다.
“1차 연도 1조 2천억.
그러나 생계지원금과 중복 방지를 포함하면 실제 순수 부담은 8천억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이 정책은 장기적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한 선투자입니다.”
잠시 후, 법무비서관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책임은 자율인가요? 강제인가요? 법적 강제력을 가지려면 시행령 개정이 필요할 텐데요.”
정책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율협약 기반으로 시작하되, 미이행 시 공정위 조정권 발동 조건을 부여합니다.
기본적으로 ‘공유책임’ 프레임을 정착시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제야 이나라 대통령이 책상 위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
“실장, 구조는 잘 들었어. 숫자도, 시스템도.
그런데 보고서 어디에도 ‘사람’이 안 보이네.”
회의실이 정적에 잠겼다.
정책의 실장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대통령님, 저는 구조를 설계합니다.
사람은 메시지로, 감정은 리더십으로 녹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나라는 미소도 짓지 않은 채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가 감정을 더할게.
이 정책은 실패한 자영업자를 위한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으로 정의하자.”
정책의는 노트북에 조용히 그 문장을 적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권리’ – 대통령 메시지 삽입.
국정홍보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보고서를 내밀며 말했다.
“사전 언론 반응 시뮬레이션 결과입니다.
진보 언론은 ‘늦었지만 환영’ 분위기고, 보수 언론은 ‘퍼주기 정책’이라고 평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나라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말했다.
“정책은 언제나 반대가 있어.
하지만 그 반대 뒤에도, 조용히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정책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라는 회의실 문을 나서며 비서관에게 말했다.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 국회에도 설명자료 보내고.
언론 브리핑은 내가 직접 할게.”
정책의 실장은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말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정책이 세상을 바꾸진 못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한 발자국 옮기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이나라는 멈춰 섰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닫는 게 아니라, 열게 해줘야지.
두리서 같은 사람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