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폐업의 문턱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2층 회의실.
늦가을 오후, 햇살은 유리창 밖에서 따뜻하게 퍼지고 있었지만 회의실 내부의 공기는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긴 회의 테이블 주위로 30여 명의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카페, 세탁소, 헤어샵, 꽃집, 코인노래방, 편의점, 미용실, 분식집, 프랜차이즈 치킨점까지.
각자의 이름표에는 업종과 운영 지역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잘 모르지만,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대로 가게를 닫을 수는 없다.
그런데 계속 여는 것도 지옥이다."
이날의 특별 간담회는 이나라 대통령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자영업자 폐업 정책을 직접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정책의 비서실장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나라는 검정 정장을 입고 조용히 입장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그러나 단단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 이나라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초대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브리핑이나 발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정책은 현실이 아니고, 사람의 삶이 현실입니다.”
그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먼저 입을 연 이는 마포에서 세탁소를 20년 넘게 운영해온 60대 중반의 박성두 씨였다.
“예전엔 하루에 다섯 바구니는 왔습니다.
요즘은... 세탁 바구니보다 미납 전기요금 고지서가 더 자주 와요.
폐업하자니 장비 처분도 못 하고, 대출 상환도 겁납니다. 그냥 계속 열고만 있습니다.”
그의 말 끝에 회의실 안엔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이어 종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미선 사장이 말을 이었다.
“김밥 한 줄 천 원 시절이 그립네요.
요즘은 깻잎 하나도 단가가 말이 안 돼요.
하지만 가격 올리면 손님이 끊기고, 안 올리면 내가 죽고... 어느 쪽이든 무너지는 거예요.”
다음은 20대 청년 창업자 임지훈 씨.
노량진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그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배달앱 수수료가 매출의 30% 넘습니다.
전 그냥 플랫폼을 위한 노동자예요. 손님은 커피값 비싸다고 하고, 저흰 남는 게 없습니다.”
그는 커피 찌꺼기가 묻은 손을 보여주며 덧붙였다.
“정말 창업이 아니라 착취였어요. 이런 시스템에서 우리는 버티는 게 기적입니다.”
그때, 뒷줄에 조용히 앉아 있던 두리서가 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에서 하나치킨을 운영하고 있는 두리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나라 대통령님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전 오늘 ‘친구’로 온 게 아닙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신 이나라 씨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실패한 자영업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입니까?”
그녀는 말을 이어가며 눈빛을 바꾸었다.
“문 닫으면 빚이 생기고, 문 열면 더 큰 빚이 생깁니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나라입니까?
이 정책이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는 정책입니까?”
두리서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정책의 실장은 조용히 일어나 앞에 섰다.
차분하게, 그리고 조금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설계를 다시 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말씀은 제 보고서의 목차가 됩니다.”
그는 발표 없이 입으로만 설명했다.
“조건부 원금 감면, 직업전환 연계, 폐업 이후 생계 보전...
이제는 생존이 아닌 전환을 위한 지원으로 바꿔야 합니다.
장사를 그만두는 것이 패배가 되지 않도록, 정책이 다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나라 대통령이 자리를 일어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여러분. 저도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정책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사람을 살릴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두리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권리.’
이제 우리는, 그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