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치킨집에서

시즌 1: 폐업의 문턱

by 에르네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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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3가, 점심시간을 조금 지나선 오후 2시. 유난히 한산한 골목길 안쪽으로 붉은 간판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하나치킨 종로점” — 문을 연 지 벌써 9년, 이 지역에서 나름 입소문도 났던 집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 골목은 다르다. 코로나가 끝났어도 손님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장 두리서는 하루 한숨을 열두 번도 더 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앞치마를 두 번 접어 벗은 채, 리서는 카운터 앞 의자에 주저앉아 있다.
전날 1.2리터 식용유 한 병 가격이 6,900원에서 9,800원으로 올랐다는 전단지를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진짜 끝물인가 봐요…”

얼음이 덜어지는 소리만 가게를 울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익숙한 실루엣. 검은 정장, 깔끔한 머리, 단단한 눈빛.

“…이나라?”

“그래. 리서야. 오랜만이다.”

두리서는 한순간에 일어서다 고개를 숙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맞는 이가 자영업자 앞치마 차림이라니. 하지만 그녀에겐 여고 시절 내내 가장 편했던 친구가 눈앞에 있었다.

이나라는 웃으며 말했다. “치킨은 아직 하나도 안 식었지?”

두 사람은 테이블 끝자리에 마주 앉았다. 리서는 불편한 듯 주방을 향해 말했다.
“은숙이 아직 있어요.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 요즘엔 주문도 줄고... 그래서 알바 안 자르고 같이 버티는 중이에요.”

이나라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테이블 네 개, 벽면에는 낡은 메뉴판과 TV. 냉장고 위에는 ‘정책자금 지원업체’ 스티커가 희미하게 붙어 있다.

“2020년에 받았던 정책자금, 아직도 남아 있어?”
이나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요?” 리서가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엔 천국인 줄 알았어요. 금리는 낮고, 유예도 되고. 근데요. 그게 함정이더라고요. 폐업하면 바로 상환해야 해요. 원금까지 전액.”

그녀는 컵에 물을 따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출은 줄었고, 인건비는 못 줄이고, 임대료는 그대로고. 이제 정말, 닫고 싶어요. 그런데 문 닫는 순간, 바로 빚쟁이가 되잖아요.”

이나라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친구의 절망이, 지금 이 나라 수백만 자영업자의 현실일 거라 생각하니 대통령의 책임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걸…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야 말했죠. 민원 넣고, 기사 댓글 달고. 근데 그건 뉴스가 안 되잖아요. 손님들이 줄 서는 집, 그게 기사지. 망해가는 가게 소리는 조용하니까요.”

순간, 문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지나갔다.
배달대행사 유니폼을 입은 남성들이 앞집 카페에서 배달을 받고 있는 모습. 예전엔 리서의 가게에서도 하루 스무 번은 울리던 배달벨이 이젠 멈춰 있었다.

“요즘 애들은 양념보다 순살이래요. 우리는 다리 튀기는 걸로 시작했는데… 메뉴 바꿔야 하나 했는데, 바꾸는 데 돈이 또 들어요.”

이나라는 묻는다. “왜 프랜차이즈를 떠날 생각은 안 해봤어?”

“계약이에요. 해지하면 위약금에, 간판 철거에, 브랜드 이미지 손상까지 다 부담해야 해요. 본사는 메뉴 바꾸라 하고, 가격 올리라 하고, 정작 우린 그대로예요.”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TV에 머문다. 뉴스 자막에 ‘금리 동결’, ‘자영업 대출 부실 확대’ 같은 단어가 지나간다.
이나라가 TV를 껐다.

“네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친구로서도, 대통령으로서도.”

두리서는 잠시 말을 멈추다 말했다.
“나라야. 나, 실패한 거니?”

그 질문에 이나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도, 친구로서도 그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주방에서 은숙이 나와 말했다.
“리서 언니, 배달 하나 더요. 마지막이래요. 고객이 ‘이 집 곧 문 닫는다던데, 오늘까진 열었네’ 하고 웃더래요.”

두리서와 이나라는 서로를 바라봤다. 웃음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표정으로.

“문을 닫지 않도록 하자.”
이나라가 천천히 말했다.
“그 문, 정부가 열어줄 수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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