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6. 취향에 관하여
Volume 6. 취향에 관하여
고백하건대 라이카는 귀족적인 물건이다 - 내 쪽에서는 렌즈 하나조차 고가라서 맘 편히 쉽게 바꾸기 힘들다. 예를 들다 보니 전혀 의도치 않게 렌즈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왕 말 나온 김에 생각을 적어본다 - 그런데 이 귀족적인 물건의 쓰임새가 내 쪽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거리 사진이다. 내가 거리 사진을 찍는 이유를 말하려면 필연적으로 내가 사용하는 렌즈와의 상관관계를 논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라이카 m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렌즈는 35mm와 50mm이다. 내 쪽에서는 35mm로 시작을 해서 지금껏 쭉 그것을 사용하고 있으니 50mm가 어떻다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 - 마스터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평생을 50mm 하나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 단지 35mm 렌즈의 길이가 50mm 그것보다 짧아,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변해 거리를 활보하기에 그것보다 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 엇.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교감이다.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니까 그만큼 사람들과의 교감도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시각뿐이 아닌 그 순간의 소리와 마음까지 함께 기억된다고나 할까 - 렌즈는 어디까지나 쓰임새와 취향의 선택이다. 그리고 풍경 사진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 그리고 무엇보다 거리 사진을 찍는 내게 오늘은 이 화각으로 이러한 주제로 장면을 찍어야지라는 거라는 생각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 언제나 머릿속에 그림은 찾으려면 없는 거지. 주제보다는 부제에서 오는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고 느낀다 - 어차피 내 몸은 하나인데 어떻게 여러 개의 렌즈를 동시에 들고 하나의 주제를 의식하며 거리를 활보할 수가 있겠는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낭만파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그랬다. "내 취향은 귀족적이지만 행동은 대중적이다"라고. 나 역시 이러한 귀족적인 라이카로 내 시선 만큼은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을 쫓는다. 달리 이야기하면 그것은 서민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순간이 가공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을 쫓으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 나의 시선은 - 내 결정의 의미는 여러 가지 경험을 바탕으로 거리에서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나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이기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제법 불어 몸도 녹일 겸 요기를 하러 들어간 첼시마켓에서 흰 수염을 나란히 기른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내 발걸음을 붙잡아 버렸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염을 좋아한다. 그것도 턱을 다 감싸는 그래서 무심하게 기른 듯 하지만 굉장히 손질을 잘한 그런 류의 수염을 말이다 - 학생 시절 같이 살던 친구 녀석은 외모만큼이나 아주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수염에 투자하는 시간이 제법 길었다 -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쪽에서는 도무지 턱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냥 수염과는 거리가 먼 체질인 것이다 - 물론 콧수염은 난다 - 그래서 호기롭던 학생 시절에는 바르기만 하면 수염이 자란다는 일본어가 잔뜩 적혀있는 약을 이베이에서 사서 발라보았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이식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없던 털이 어디서 자라나겠는가. 난 전혀 예상 못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참 순진했던 거 같다. 아직도 거리에서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사람들을 보면 그 시절 그 해프닝이 생각나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온다.
USA | NYC | 2016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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