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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Jan 29. 2016

뉴욕, 라이카로 본 시선

Volume 8.  기억이라는 시간을 이야기 하기


Volume 8.  기억이라는 시간을 이야기 하기





기억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이발소의 대화   @hyunwookim/bensprezzatura




 기억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기억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 그리고 우리는 - 기억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잊고 싶다고 해서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소중한 기억이라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만 - 어느 한 부분에서 편집되어진  것처럼 툭 끊겨버려서 - 퇴색되어 버려서 떠올리려고 해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가 없는 것도 있다. 누구나 이렇게 기억에게 압도 당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타까운 기억에 관한 순간을 기록하려고 한다.


 바버샵 - 여행 중에 꼭 한 번은 머리를 하고 싶어 제법 유명하다는 곳에 시간을 들여 찾아갔었는데, 아쉽게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무산되었다 - 아니 이발소라고 하는 게 우리 정서에 더 맞으니 이발소라 부르겠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발소에 관한 추억이 있다. 내 쪽에서는 그것이 아버지와의 기억이다. 고백하건대 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을 다녔었다. 핑클 파파도 꾸준히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처음 들어갔던 이발소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게 안을 가득 메우던 면도 거품 냄새 - 이런 류의 냄새가 지금은 무척 좋은데 그 시절에는 처음이라 이상했다 - 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남자 어른의 냄새랄까. 그러한 것들이 뒤엉켜 코끝을 간지럽혔다. 게다가 시각적으로도 낯설었는데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의 모습과 건조대에 걸려 있는 흰 수건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큰 테이블 위의 칼 면도기들이었는데 이발소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그 모든 것이 기묘하기만 했다. 어린 마음에 이발소는 어른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단골손님이셨던 아버지는 말없이 자리에 앉으셨고 - 아버지도 나처럼 말수가 적으셨는데 아니다 내가 나의 아버지를 닮은 거다 - 이발사 아저씨는 가위질로 아버지의 머리를 터프하게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곤 의자를 눕히더니 거품을 잔뜩 묻힌 후 면도칼로  아버지의 턱을 세심하게 슥슥 긁어내셨다. 난 숨죽여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거기에는 두 사람의 대화는 없었고 오직 사각사각 거림과 슥슥의 소리만 있었다 - 이윽고 내 차례가 왔고 난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는데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뒤로 아버지와 함께 두어 번은 더 이발소를 갔었는데, 아마도 내가 적응을 잘 못하는걸 아셨는지 언젠가부터 아버지께서는 혼자 이발소를 다니셨다.






현재의

찰나에 의해

압도당해 보았는가



 시간이 흘러 난 비록 턱밑에 수염은 여전히 없었지만 코밑에 듬성듬성 수염이 생긴 스무 살의 남자가 되었고 그제야 아버지와 이발소를 다시 찾고 싶어 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못난 아들이 중고등학생 시절 6년이라는 긴 사춘기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오롯이 두 사람만의 은밀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맨하튼의 어느 작은 이발소는 지나가던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고,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기억은 뉴욕의 이발소에서 아버지와 함께 갔었던 유년기의 그 이발소로 연결되어졌다. 그 시절 이발소의 사진은 없지만 - 우리 자신에게는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과거와 일치하는 그림이 필요하다 - 현재의 찰나에 압도당해 그 기억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현재로부터 과거의 기억도 다시 존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덕분에 나의 시선으로 도시의 사진을 찍고 그 기억과 함께 글을 기록하는 행위의 본질을 점점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의 기억이 시간에 의해  압도당해버리지 않고 떠올릴 수 있을 때, 그리하여 나의 내적경험이 선명해질 때, 비로소 이 에세이의 존재 이유를 알 게 될 것이다. 더불어 나 자신의 존재 이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 사진은 내게 뉴욕과 한국이라는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선적 이동을 선사해준 것이고, 현재의 찰나에 의해 압도되어진 나 자신의 기억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줬다.




USA  |  NYC  |  2016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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