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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Feb 03. 2016

뉴욕, 라이카로 본 시선

Volume 10.  아버지의 장롱을 기억하는가


Volume 10. 아버지의 장롱을 기억하는가





폴라로이드

포토그래퍼야

클래식이지





소호의 클래식한 폴라로이드 사진가   @hyunwookim/bensprezzatura




소호에서 만난 거리 사진가 A는 본인의 인사를 그 외모만큼이나 쿨하게 했다. 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고 있었고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어디선가 묵직한 톤의 인사가 훅 들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슥 돌렸다가 깜짝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그의 외모와 카메라들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클래식했으니까. 클래식한 멋을 좋아하는 게 내쪽에 취향이라 “클래식이지” 라는 아무것도 아닌 이 단어가 뇌리에 박힐 정도로 멋진 인사란 생각이 들었다. 뭐라 대답 할 채비도 못한채 멍하니 있었고 이윽고 "너 쿨한데!  포토그래퍼지? 네가 좀 전에 찍은 사진 볼 수 있어?” 란 그의 말에 비로소 현실세계로 전환이 되었다.


그렇게 우연적인 만남으로 이런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난 이 사진을 그에게 보내 주려고 아이맥을 열어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던 이메일이 난감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날 그에게서 받은 그의 명함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지갑 속에 넣어두었던 명함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나의 유년시절인 80년대에 한국의 거리,  그중에서도 관광지라 부를만한 장소에는 사진가들이 많았는데 그중 내 기억엔 폴라로이드 사진가들도 제법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셨다 - 그 당시에 신혼부부들의 허니문은 압도적으로 제주도였다 -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을 하신 두 분께서는 돌아오시기로 한날에 제주도에 폭설이 내려 공항에 발이 묶여버렸고 아주 아주 힘들게 돌아오셨다는 말을 농담 아니고 수십 번은 더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시절 제주도에는 특별한 조합의 파트너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사진가와 택시운전사이다. 사진가는 커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이드 역할과 스냅을 찍어주었고, 장소이동을 하기 위해선 또  한 명의 가이드 파트너가 필요했으니 그 역활이 바로 택시운전사였다. 정말이지 환상의 조합이 아닌가! - 문득 지금 그분들은 모두 어디 계실까란 의문이 든다 - 마치 배트맨과 로빈처럼 말이다





내가 가진 모든

예술적인 감각은

유전임이 확실하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아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가장 좋은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계셨는데 장롱에 고이 모셔두었던 게 생각이 난다. 이유는 몰랐는데 그 시절  집안에 보물은 언제나 장롱 속으로 향했고, 그중에서도 니콘 카메라는 아버지의 클래식 기타와 함께 보물 1호였다. 가끔 촬영을 하러 나가시지 않는 날에는 장롱문을 열어 카메라를 꺼내 렌즈들을 손수 한 땀 한 땀 손질을 하곤 하셨는데, 당연하게도 이 대목이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 고백하건대 내가 가진 모든 예술적인 감각은 유전임이 확실하다 - 나의 라이카 카메라도 장롱은 아니지만, 서재의 책장 - 책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 에 모셔두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아끼는 보물은 모두 서재에 있는 거 같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그 시절, 아버지의 장롱이라는 공간의 쓰임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곳은 비록 좁고 어두웠지만 아버지만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고, 동시에 당신의 안전한 보물 창고였었던 것이다. 맨해튼의 거리 사진가 덕분에 소호에서 어린 시절 당신의 장롱으로, 그리고 다시 지금 나의 서재로까지 또 하나의 잊혔던 기억을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USA  |  NYC  |  2016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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