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우 Mar 13. 2016

뉴욕, 라이카로 본 시선

Volume 17. 고민의 힘

Volume 17. 고민의 힘






나는

고민의

힘을

믿는다






소호         ©Hyunwoo Kim/bensprezzatura




 소호의 거리를 걷다가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난 우연히 빛과 어둠에 - 빛과 어둠은 내쪽에서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 주목하게 되었다. 빛과 어둠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줄곧 상징적인 의미를 가져왔다. 성서는 빛과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좋아하는 두 아티스트인 램브란트와 카라바조도 역시 심리적인 목적을 위해 명암 대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때였다. 순간 남자가 굳게 다문 입으로 어둠 속을 걸어나왔다. 마치 처음부터 어둠 속에 존재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눈은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물체의 움직임은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까닭에 바로 이 불편함이 주는 심리적인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간단할 테지만, 사실상 이 순간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상황도 -  관심만 있다면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 아니고 단지 개인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기에 이 순간의 분위기랄지,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팔짱을

낀다는

것에

대하여



 어떤 스탠스로 무엇을 쓰면 좋을지 기억의 레퍼런스를 연결하기가 힘들다. 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두고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이 고민의 아이디어에는 사소한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 이것의 소재를 뉴욕에서 내가 만난 사람이라고 정했지만, 여러 번 생각해도 문제임이 틀림없다  - 에세이가 완성되었을 때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하나가 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아무렴 어때 마음에 드는 사진 - 어떤 날은 유독 돋보이는 사진이 있다 - 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이 사진 속 타인과의 순간에서 대체 어떠한 글을 쓰면 좋을까. 란 생각에 절로 팔짱을 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이 팔짱을 끼는 심리에 대해 말해보자면, 팔짱을 끼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 내쪽에서는 포토에세이를 쓰기 전, 고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지만 -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팔짱의 의미로서 살펴보자. 보편적으로 팔짱의 행위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심리와 함께 무의식적인 방어자세, 즉 몸짓으로 말하는 반대를 의미한다. 더불어 기분에 따라서 모호한 미소를 더하면 경계심의 표현이 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 팔짱의 행위가 나 자신이 상대와의 대화에 몰두하고 있다는 긍정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팔짱이라는 행위의 빛과 어둠이라고나 할까 - 사실 모든 행위에는 빛과 어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주목하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 -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는 잡스는 언제나 멋졌다 - 를 빌려 쓰는 경우인데, 이것은 보통 성공한 자의 위엄의 표현이거나 자신의 화려한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다시 말해 이유가 없는 행위는 존재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 보면 요즘 타인으로부터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작년부터 라이카로 사진 작업을 많이 하고 나름에 좋은 성과도 거두어서 일 텐데, 나라는 존재를 사진을 상당히 좋아해서 뚜렷한 목적과 명료한 시야를 갖고 인생을 재밌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그렇지 않다. 매일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닐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않을뿐더러 메모를 하기 위해 들고 다니는 노트 역시 없다. 평소에는 반드시 필요한 짐이 없다면 가방 - 내가 가방을 챙기는 이유는 운동하러 짐에 갈 때, 가끔 아내가 도시락을 만들어 줘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이렇게 딱 3가지다 - 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그 모든 걸 계획적으로 플래너에 기록해 두지도 않는다. 다만 한 가지가 있는데 나는 고민의 힘을 믿는 타입이다. 평소에도 생각을 제밥 많이 하는데 이를테면 집에서 직장과의 거리가 제법 멀어 지하철 안에서 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팔짱을 낀 채 생각을 많이 하고 - 대부분의 시간은 멍 때리기를 하지만 - 나름의 생각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비추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난 아마추어이고 도시의 모습보다는 내가 찍고 싶은 도시의 순간만 찍고 있다.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난 팔짱을 낀 채 현재의 나와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USA  |  NYC  |  2016  |  ©Hyunwoo Kim  






benkim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ben_sprezzatur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