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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Jan 20. 2016

persona through leica

Volume 2. 계기는 라이카다


Volume 2. 계기는 라이카다



이 모든
계기는
라이카다







 도시의 어둠이 내리기 직전이었다. 센트럴 파크를 걷다 도심의 노을이 문득 보고 싶어 졌다. 서둘러 공원을 나와 5번가를 따라 맨하튼의 중심부로 향했다. 때는 8월이었고 날씨는 햇빛이 사라지자 아스팔트가 식으면서 도로 위 뜨거움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제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노을이 지는 찰나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 순간을 절대로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프레임 속에 시선을 던졌다. 급했다. - 그래서 먼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 양해를 구하고 물어보니 여인도 나처럼 도시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 그리곤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을 기록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확인한 이 사진에서 무언가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순간을 잘 포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드로잉을 곧잘 한다. 아니 곧잘 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 지금은 더는 드로잉을 하지 않고 있기에 - 그중에서도 아무런 컬러도 들어가지 않는 블랙 앤 화이트의 심플한 인물 라인 드로잉을 매우 좋아한다 - 고백하건대 드로잉 포트폴리오로 디자인대학을 들어갔을 정도다 - 호기롭던 이십 대엔 스케치북만 들고 런던으로 건너가 두 달간 거리에서 오직 만나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현재의 나는 드로잉 대신 사진을 찍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카메라는 스케치북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거리에서 만나는 인물과의 순간에만 몰입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영혼의 시선>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가장 가벼운 짐만 챙겨 들고 온갖 도시를 돌아다녔다. 이 말은 단지 그 유명한 라이카 카메라만을 암시하는 건 아니다. 사실 이 놀라운 휴대용 카메라 덕분에 그는 군중들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사진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 테크닉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것의 정체성과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내 쪽에서의 과제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의 첫 디지털카메라가 라이카 m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선 예술대학을 들어갔던 스무 살, 필카를 쓰던 시절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전공은 아니지만 - 어쩌다 보니 전공이 다른 대학을 두 곳이나 졸업했는데 영화가 주전공이었던 시절에 - 커리큘럼 상 필름 카메라 수업을 일 년간 들어야만 했었고, 성격이 급한 타입이기도 하였고, 난 한 장의 순간보다 영상(영화)이 좋은데 하며 뒤로 숨어버리곤 하였다. 어쩌면 기다림이 주는 미학적 형태를 전혀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셀 수없을 정도로 많은 필름을 배설 - 딱히 생각나는 사진이 없었기에 이 표현이 맞을 거 같다 - 하였고, 그렇게 1년간의 수업이 끝나버렸고 필름 카메라와의 추억도 잊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배병우 교수님의 수업 - 재학 중인 학교의 사진과 교수님이었다 - 을 들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나는 그분이 누군지 몰랐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10년이 지났다. 나는 어느새 결혼을 하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비로소 다시 카메라와 조우하게 되었다. 아내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던 중 빨간 라이카 로고에 홀려 무의식적으로 들어가게 된 라이카 매장에서 처음 보게 된 M 카메라가 눈에 밟혔고 - 이 카메라가 내게 왜 필요한지를 이 년 동안이나 고민했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내에게 선물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가벼운 짐만 챙겨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라이카 덕분에 나는 뉴욕에서 잊고 있었던 주제와 나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았고, 지금은 더욱 진지하게 사진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언가 쑥스럽게도 대가가 하는 자서전 속 이야기 같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그 고민의 힘으로 사진을 찍고 싶기에, 내쪽에서는 이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만 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인생의 주체가 되어 자신을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5년, 도시에 많은 순간들 중 뉴욕의 선셋은 나에게 이렇게도 기억된다.





USA  |  NYC  |  2015  |  ©Hyunw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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