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경쾌한 단어가 말을 걸 때 #3 여름밤
부드럽고 경쾌한 단어가 말을 걸 때 #3 여름밤
"여름밤 냄새가 나." 나의 아름다운 친구는 여름이 가까워 오면 눈을 빛내며 말한다. 그 아이의 여름밤은 그렇게 설레고 꿈꾸듯 했나 보다. 풋풋한 사랑을 하던 계절이었을까? 온 가족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별을 봤을까? 아니면 고3 시절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답답한 숨을 틔어 주는 냄새였을까. 나는 대답한다. "그러네, 벌써 여름이야." 여름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나는 그저 친구를 구경하는 재미에 미소 짓는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만난 건 10cm 노래의 제목처럼 '우연인 듯 운명'이었다. 이름과 꼭 닮은 어느 따뜻한 봄날 내 인생에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 그 친구 덕에 나는 참 좋았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감탄하다가도 든든한 어른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들에 나는 수십 번 눈물지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따뜻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네가 우선이야."
살면서 그렇게 확신에 찬 어조로 굳건하게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었고, 얼마간의 완벽주의와 함께 의무와 책임의 굴레를 지고 사는 아이였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더 잘하지 못해 스스로를 책망하는 밤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름밤을 좋아하는 나의 아름다운 친구는 나보다 더 나를 믿어준다. '내가 옳다.'고, 나의 삶을 살라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정답이 없는 삶에서 정답처럼 살고 싶어 버티고 서있는 나를 편히 앉게 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
사람들은 필요한 때에 내게 온다. 내가 그를 찾아가는 걸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내게 오는 걸까. 어떤 평범한 밤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말을 맺는다. '돌처럼, 산처럼, 물처럼 살아야지.' 하는 친구의 말에 나는 '바람처럼, 물처럼, 나무처럼 살아야지.' 하고 대답한다. 서로의 방향이 비슷한 듯 다른 것을 보며 깔깔 웃고 너무 너 같다며 킬킬댄다. 울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절망하면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웃으면서 성장하는 순간이 소중하다. 여름밤 같은 순간이 삶에 종종 찾아오기를. 가을밤에도, 겨울밤에도, 또 봄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