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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자꾸 빠진다. 언제부터지?

회색빛 나에게 단어가 말을 걸 때 #1 일

by Benn


회색빛 나에게 단어가 말을 걸 때 #1 일

머리카락이 자꾸 빠진다. 언제부터지? 한 달 정도 전부터 머리 감을 때 한 움큼, 머리 말릴 때 한 움큼, 생활 속에서 한 움큼 머리카락 빠지는 게 일상이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두피관리샵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해리 포터의 트릴로니 교수님처럼 안경과 곱슬머리를 가진 관리사분이 나를 반겼다. 두피는 스트레스와 몸의 상태를 말해주는 지표 중 하나라고 하는 말에 양심이 찔려오기 시작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나 내 상태 같은지, 분명 평범한 말이었는데 내게는 비수가 되었다.



"밥은 건강하게 챙겨 먹으세요?"

"아니요."


"잠은 잘 주무시나요? "

"아니요."


"물을 적게 드시는 것 같네요."

"아 정말 적게 먹어요!"


"직장이나 개인사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받을 만한 일이 있었나요?"

"네, 많이요."



트릴로니 교수님 같은 두피관리사분이 내 어깨, 목, 팔과 같은 부분을 마사지해 주셨는데, 움켜쥐는 곳마다 내 몸은 비명을 질렀고, 그건 마치 내가 얼마나 나에게 무심했는지를 알려주는 성적표 같았다.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관리사분은 자신의 일과 인생을 즐기고 계신듯했다.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오늘 하루나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태도에 편안함이 보였다.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에 대한 미안함이 쌓여가던 차에 결정적 한 마디가 귀에 꽂혀 들어왔다. "그냥 생각이든, 스트레스든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붙잡고 있는 건 이미 '일'이 된 거예요. 내가 가진 에너지의 수준을 넘어서면 뭐든 그냥 '일'이죠. 그럴 땐 그냥 쉬어야 해요." 나는 업무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나에게 일을 강요했다. 그냥 생각, 고민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들키지 않으려 눈을 꼭 감고 그분의 말소리들을 스쳐 보냈다.


나, 쉬고 싶었구나.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멈추고 쉬고 싶었구나. 생각과 걱정도 일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잊고 있었으니, 충분히 쉬고 있는 데도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하고 갸웃거렸다. 왜 힘을 내지 못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단순히 지쳐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 명상이란 걸 해봐야겠다. 나를 진정으로 쉬게 해주고 싶다. 그만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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