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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회피형으로 계속 살 수는 없어

덤덤한 듯 진지하게 단어가 말을 걸 때 #4 갈등

by Benn

덤덤한 듯 진지하게 단어가 말을 걸 때

#4 갈등



갈등회피형. 나는 오래도록 그 단어와 같은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은 기억이 잘 안 나고, 10대 때는 갈등을 정면으로 맞선 기억이 없다. 친구가 떠나면 '떠나나 보다-' 하고 속앓이 하고, 괴롭힘이 있으면 나에게 '왜 그러는 거지?' 하고 무시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은 피해 다녔고 엄마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에게는 36계 줄행랑이 최고라고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일 없이 스무스하게 10대 시절을 잘 넘겼고, 나는 내가 갈등회피형이라는 자각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회피할 수 없는 갈등을 마주했다. 회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교실의 책임자였고 갈등의 중재자였다. 회피하던 온갖 문제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은 참 아팠다. 왕따를 주동하는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고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어 달래야 했다. 갖가지 문제들로 부딪히는 아이들을 혼내고 타일러야 했고, 소리 지르며 슬픔을 말하는 학부모와 상담해야 했다. 도망갈 곳이 없어 상담을 미루고 전화를 미뤄본 적도 있었지만 뭐든지 작을 때, 즉시 해결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갈등과 상황을 책임지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갈등 회피형이지만, 필요한 갈등의 경우에 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면하는 어른이 되는 중이다. 아이같이 눈 질끈 감아 외면하던 것들에도 손을 뻗어 본다. 학창 시절 외면하던 것들을 책임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어찌 나뿐일까. 고개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다 그렇게 조금씩 커간다. 모두 조금씩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에 우리는 해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당신이 지금의 당신이게끔 한 것들을 생각해 보자. 모두 이미 경험하고 지나온 산들이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성공자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에 살아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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