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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Nov 04. 2019

EP 16.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어느 순간부터 축구부 녀석들이 운동을 하러 오는 날이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배 나온 코치 아저씨 한 명과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축구부원 십 수명은 항상 푸드트럭 뒤편에 운동화와 짐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운동을 시작했다. 왕왕, 종종, 가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이, 항상 말이다. 그동안 내게 양해를 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그럴 고려조차 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여겼기 때문일 거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같이 공원을 쓰는 입장에서 트럭 뒤편으로 진 그늘이 물건을 보관하기도 좋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좋으니 그럴 수 있지. 십 수명의 운동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아무렇게나 던져두어 꽤나 너저분해 보이지만 굳이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 하며 이해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 없음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배불뚝이 코치 아저씨가 초시계로 카운트를 시작하면 축구부원들은 무리를 지어 일제히 공원 산책로를 뛰기 시작한다. 정해진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코치 아저씨가 서 있는 피니쉬 라인을 지나서 운동 시작 전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짐가방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다. 바로 내 트럭 뒤로 말이다. 그리고 달리던 몸을 트럭을 부여잡으며 멈춰 선다. 그럴 때마다 트럭은 크게 흔들렸고 내부 집기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했다.


처음 녀석들이 트럭을 흔들어 재꼈을 땐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어린 친구들이 생각이 없어서 그런가 보구나 했다. 그래서 트럭이 흔들리니 그러지 말아라고 웃는 얼굴로 주의를 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 했었다. 딱히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녀석이 바로 손을 떼기도 했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일이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다음에도 늘 네댓 명 정도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난번과 같은 말로 주의를 주는 게 전부였다. 마음 같아선 이 경우 없는 녀석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싶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혼쭐을 내고 싶었다. 저 넓은 운동장을 두고 왜 여기서 뜀박질인 거냐, 이 넓은 공원에서 왜 내 트럭 뒤에 니들 짐을 널부러 트려 놓는 거냐, 도대체 왜 트럭을 흔들어서 내게 피해를 주는 것이냐 이 녀석들아!라고.


그렇지만 나는 자발적 을이 된 동네 장사꾼이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화를 삭여야 했다. 이 웬수 같은 축구부 녀석들이 손님이 되어 준 적은 없지만 주말에 경기를 하러 오는 다른 축구부들이나 학부모, 관계자들에게 혹여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손님들을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이 내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평소에 해야 할 말은 대상이 누구여도 하는 나였다. 그래서 가끔 당돌하다는 평을 받을 때도 있고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자랑할 거리가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을 가려 가면서 해야 말을 못 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생계가 걸린 현장에서 나는 당돌할 수도 싸가지가 없을 수도 없었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인데 그게 뭐 싸가지 운운할 일인가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먹고사는 ‘동네 장사꾼’이니까. 벌이도 시원찮은데 내 언행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매출이 줄어들게 되면 곧바로 생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대출금과 각종 고지서들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내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적당히 사람 좋은 척하며 그러지 말라는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저 멀리 공원 초입에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됐다. 원한 살 일을 한 적도 없는데 이 녀석들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던 걸까. 또 그 모습을 늘 가만히 지켜보던 코치 아저씨는 뭐하는 양반인지 참, 다 같이 나쁜 놈들이다. 에잇, 퉷!


그때 녀석들에 화를 냈다면 어땠을까? 속은 정말 시원했을 텐데. 한바탕 불쾌한 시간을 맞더라도 다신 그러진 않았을 텐데. 안 좋은 소문이 날 거라는 생각 따위, 자발적 을이 된 나의 과대망상이고 피해의식이지 않았을까?


아, 모르겠다. 지금도 녀석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고 정말 싫다. 공원에서 장사했던 모든 시간들이 참 즐겁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 녀석들만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안 그래 주셨으면 좋겠는데...


오전 산책을 마치고 항상 커피를 사 드시던 할머니께서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다가오셨다. “오늘은 이게 있어서 커피는 다음에 마실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네, 그러셔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산책로를 나오시던 할머니 뒤로 사람들이 줄지어 종이컵을 들고 홀짝이며 나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지 싶어서 트럭에서 나와 시야에 가려져 있던 산책로 안쪽을 봤다. ‘아, 교회에서 나오셨나 보네.’ 목사님으로 추정되는 아저씨 한 명, 그리고 권사님으로 보이는 연세가 있는 아주머니 세 분이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스테인리스 보냉 통 사이즈를 보니 종이컵으로 수백 잔은 거뜬히 나올 분량이었다.


푸드트럭을 하게 되면서 휴업(?) 중이긴 하지만 본업이 전도사 출신인 입장에서 여러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사서 마실 사람은 사서 마시겠지만 잠재적 손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들은 놓치게 생겼구나. 좋은 마음으로 전도하시는 데 내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는 나는 어느새 교회와 너무 멀어진 걸까?


아니, 근데 전도하는 건 좋은데 뻔히 커피랑 음료를 팔고 있는 내 앞에서 무료 음료를 나눠주는 건 너무 배려가 없는 거 아닌가? 여기는 영업하는 곳이니 방해가 됩니다 라고 말해볼까? 그럼 나는 전도를 방해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말을 하면 알아들을 사람일까?


내 눈에는 저렇게 전도하는 게 정말로 좋은 방법일까 의문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전도가 된다면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저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야, 나야 크리스천이지만  만약 이곳이 불신자나 타 종교를 가진 분이 장사하는 곳이라면? 그들도 나와 같은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전도한다는 저분들의 행동 때문에 오히려 시험에 들고 교회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지 말고 교회에 직접 연락을 해볼까? 그러다 안 좋게 받아들이고 나쁜 소문을 돌게 하면 어쩌지? 동네 장사하는 입장에서 손님들이 끊기면 큰일인데... 등의 생각들을 했다. 그분들이 3시간 남짓 무료 음료와 전단지를 다 돌릴 때까지.


여러 고민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나로서는 그분들의 행동이 이웃을 배려하지 못한 이기적인 해동이었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론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묻고 또 물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종교적 열심으로 생긴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이웃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갖추지 못한 결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례를 내가 참아줄 수 있다면 내 고민도 거기서 끝이날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끙끙 거리며 그분들이 어서 자리를 떠나시길 기도할 뿐이었다.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조금 더 이해의 폭을 넓혀보면, 보통 이렇게 전도 나오시는 분들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머님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예수 믿으세요’, ‘교회 다니세요’ 등의 멘트와 함께 교회 소개 전단지나 기독교 복음에 대한 소개가 담긴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으로 영혼을 구하는 전도를 한다고 굳건히 믿고 계신다. 개인적으로 이런 전도 방법과 그 이면에 있는 시스템을 지지하지 않지만 그분들이 어떤 마음가짐이신 줄은 알기에 이해해 보기로 한 거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하는 말인데 나는 그 순간 이해를 선택했지만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장사하는 곳 앞에서 음료를 나눠 주며 장사 방해라니. 차라리 물티슈를 나눠 준다거나 더운 여름이니 부채를 나눠 주시지. 그랬다면 나도 응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래도 혼자 끙끙 거리며 이해하고 배려해주려고 노력하는데 저분 들은 나를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해버렸다.


한참 그렇게 속상해하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다가 나를 돌아보게 됐다. 교회와 학교 밖에 몰랐을 때의 나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종교적 열심이 강했었지. 내가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세계가 전부라 생각하며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않는 사람들과는 어울릴 줄도 몰랐었지. 아, 나도 내 종교적 열심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도 남았었겠구나, 하는 반성이 일었다. 푸드트럭을 하며 세상으로 뛰어들기 전엔 나도 내가 비판하는 저분들과 다를 바 없었던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민망함과 함께.



장사를 하기 전까지의 나는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사상과 언어와 관계 안에서만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래서 2년 동안의 푸드트럭 경험은 교회 안 개구리였던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관계에 대해, 매일 반복되어 지긋지긋하기도 하지만 돈을 벌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장사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장사를 하며 그동안 갖지 못했던 시야를 갖게 되었으니 교회 사역자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성도들의 고단한 일상을 이해하며 조금 더 보듬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교제와 말씀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 점점 더 교만하고 무례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여 세상과 담을 쌓고 소금과 빛의 소명을 잃어가는 교회에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


푸드트럭을 그만둔 후에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일터에서 돈을 벌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푸드트럭을 하며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과 교회에 대해 갖고 있던 고민 또한 이어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바람을 갖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처럼 앞으로의 삶을 계속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어느 자리에서든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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