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가 있는 오정대공원 주변 구역을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잠시 공원에 들렀다 가시는 때가 있다. 일을 마무리하시기 전인지, 아니면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시러 들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뚝뚝 떨어지는 땀을 연신 닦으며 그늘을 찾아 가시는 걸 보면 어쨌든 고된 일을 마치고 오시는 듯 보였다.
아저씨들 중에는 브루스 윌리스를 닮으신 아저씨 한 분이 계신다. 연세는 60세 내외이신 듯하다. 하지만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건장한 체격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50대 초반으로 보이신다. 그래서인지 다른 아저씨들과 다르게 브루스 아저씨가 걸친 녹색 조끼는 맞춤이라도 한 듯 핏이 살아 있어서 멋져 보였다. 푹 눌러쓴 캡 모자와 구레나룻부터 턱을 감싸고 있는 짧고 희끗한 턱수염도 무척이나 근사했다.
아무튼 아저씨가 공원에 쉬러 오셔서 그늘 아래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모자를 벗고 쉬고 계실 때면 살짝 벗어진 머리에서부터 턱 아래로 떨어지는 구슬땀 때문에 영화 다이하드에서 한바탕 사건을 처리하고 온 브루스 윌리스를 떠 올리게 해서 부르스 아저씨라고 부르게 됐다.
아저씨들이 그늘에 자리를 잡으시면 나는 주문을 받지 않아도 시원한 아이스티나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드렸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수고한 분들께 시원한 음료 한 잔 베풀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고, 아저씨들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는 것으로 음료 값은 충분했다.
한 번은 브루스 아저씨께서 공짜 음료가 미안하셨는지 동료분들의 커피를 사러 오셨다. 주문받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아저씨께서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아저씨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일하고 계신다고, 그러면서 청년도 힘내서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저씨가 오시는 시간 때엔 손님이 없어서 늘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그 모습이 측은해 보이셨나 보다.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은 그리 특별한 것 없는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아저씨의 이마에서 흐르는 진한 구슬땀이 아저씨의 말을 진실하게 만들었기에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 정말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됐다.
며칠 후에 브루스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반갑게 인사를 하시며 오셨다. 함박 미소를 짓고 오시는 모습이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싶어 나도 방긋 웃어 보이며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트럭 앞으로 다가오신 아저씨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손을 뻗어 내게 내미셨다. 나는 매대에 양팔을 집고 허리를 숙여 아저씨의 내민 손을 보았다. 아저씨의 손에는 초록의 네 잎 클로버가 앙증맞게 쥐여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며 아저씨가 씨익 웃으셨다.
“네 잎 클로바야,
우리 사장님 대박 나시라구”.
초등학교 1 ~ 2학년쯤, 혹은 그보다 어렸을 적에 동생과 함께 집 근처 풀 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따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풀밭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도 나는 겨우 하나를 발견하는 날이 있을까 말까 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 효진이는 자신이 딴 네 잎 클로버들 중 하나를 내게 나눠 줬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라는데. 나는 행운이 없는 아이이고 동생은 행운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워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풀 밭에 쪼그려 앉아 네 잎 클로버를 따 볼 일은 없었다. 중학교 때 어떤 친구가 네 잎 클로버를 코팅해서 갖고 다닌 것을 본 기억이 네 잎 클로버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그런데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전부인 브루스 아저씨가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셨다. 아저씨가 풀 밭에 쪼그려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가슴 깊은 곳에서 따듯한 행복이 차올랐다.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함박 미소를 지으며 찾아오신 이유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풀 밭에 쪼그려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은 이유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기 위해서라니.
나는 비록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지는 못하는 행운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행운을 나눠주는 브루스 아저씨 같은 분을 만날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아저씨 고마워요. 건강하셔야 해요.
앞으로도 저 같은 사람들에게
행운을 나눠 주셔요.
저한테는 아저씨가 네 잎 클로버예요.
아침에 살짝 내린 비가 잦아든 한적한 오후, 30대 초중반의 유모차를 끄는 아기 엄마 손님이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공원 청소를 담당하시는 미화 아주머니가 성이 나서 내게 찾아오셨다.
커피를 내리며 무슨 일이시냐 여쭈니 공원에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 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려서 힘들다고 대뜸 고함을 치셨다. 푸드트럭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며 커피를 팔 때 사람들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게 하라고 야단을 치시며 씩씩 거리셨다. 아주머니께 죄송하다는 사과와 안내문을 써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도 미화 아주머니는 화가 풀리지 않으셨다. 정중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더 쓰레기가 아무 데나 버려져 있으면 공원관리과에 얘기를 해서, 어, 여기서 장사를 못하게 할 줄 알아!”라고 고함을 치시는 바람에 표정관리를 하기 힘들어졌다.
애써 바짝 당겨 두었던 양쪽 입꼬리는 내려왔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앞에 손님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매우 짜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정을 컨트롤하며 상황을 넘기기 위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순간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아기 엄마 손님이 미화 아주머니를 향해 돌아 서시더니 살짝 떨리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씀하셨다. “아주머니! 사장님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사장님께 그렇게 협박하시면 안 되는 거죠!”
아마도 평소에 화를 잘 내 본 적 없는 분이셨던 것 같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엔 어이없는 상황을 목격한 데에서 찾아온 분노가 느껴졌고 눈가엔 눈물이 살짝 그렁이고 있었다.
아기 엄마의 얘기가 끝나자 잠시 머뭇거리던 미화 아주머니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서 이번엔 아기 엄마에게 고함을 쳤다. 사장한테 얘기 중인데 왜 아무 상관없는 그쪽이 나서느냐며,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서 일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아느냐며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잠시 두 분 사이엔 양보 없는 언쟁이 오갔다.
아기 엄마는 미화 아주머니의 오늘 일을 시청으로 민원을 넣겠다고 마지막으로 경고했고, 미화 아주머니는 마음대로 하라고 대꾸를 했지만 이내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두 분의 설전은 아기 엄마의 승리로 일단락이 났다.
하지만 아기 엄마의 마음도 편치 못했을 거다. 그리고 내 마음도 정말 편치 못했다. 커피를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유모차를 끌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분 좋게 산책을 하려고 했었을 텐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기 엄마에게 대신 나서 주셔서 고맙다고, 불편한 상황을 겪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기 엄마는 미화 아주머니께 내가 직접 말하기 어려운 입장일 것 같아서 대신 나선 거라며, 자신도 공무원이라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싱긋 웃어 보이고는 산책을 떠나셨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괜스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손님인 걸 보면 처음 온 손님이셨을 텐데,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해 대신 나서 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화도 잘 못 내는 분 같은데 무시무시한 아주머니를 향해 맞서 싸워 주신 용기도 고마웠다. 그래서 떠나는 아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축복을 빌어 주었다. 부디 그 선한 마음에 상응하는 축복을 받으시길, 유모차 속 아이가 엄마의 그 선한 마음을 닮아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주길.
아기 엄마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본 뒤 상한 감정을 추스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미화 아주머니가 다시 들르셨다. 사과를 하러 오시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트럭 앞에 다가섰을 때 사과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아까 아기 엄마가 왜 우리 대화에 끼어 들어서 성질을 냈는지 모르겠다며 뻔뻔한 얼굴로 입을 놀리셨다. 말하는 본새로 보아하니 아주머니 자신은 말투가 원래 사나우기 때문에 아까도 악감정을 가지고 온 게 아닌데 끼어든 아기 엄마 때문에 싸움이 됐다며 나를 자기편으로 삼으려 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그 사람, 민원을 넣겠대요?” 하며 본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지만 화를 참으며 차분한 말로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사실 나도 아까 아주머니 때문에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던 거고, 그런 나를 위해 아기 엄마가 대신 나서 주신 거라고. 그러자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그래, 사장님이 기분 나쁠 수는 있는데 그 사람이 왜 나서서 우리말에 끼어들어서 시청에 민원을 넣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한 사람이겠다는 판단이 섰다. 한 번 더 화를 억누르며 앞으로는 안내문을 붙여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조치하겠다고 다시 말하고는 아주머니가 눈 앞에서 사라져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가 아름답기를 바랐던 아기 엄마와의 에피소드는 찝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앞으로 꼴도 보기 싫은 아주머니와의 껄끄럽고 불편한 관계는 끊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무시하면 그만이고 쌀쌀맞게 대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미화 아주머니는 늘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면 나만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아주머니는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쌓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아주머니를 위로하고 공감해 드리기였다.
“오늘도 많이 힘드셨죠? 시원한 음료 한 잔 드릴게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등의 말로 미화 아주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드렸다. 교훈을 남기고 해피엔딩을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발 더 물러서니 아주머니의 태도가 바뀌었다. 적대시하던 매서운 눈초리가 풀어지고 친구 분들을 모시고 와서 커피를 사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척이나 가까워지거나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당한 선을 유지하고 으르렁 대지 않게 됐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그걸로 된 거다.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