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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Sep 01. 2022

점식식사와 알약

초단편 소설


다갈색의 짙은 원목 식탁과 대조되어 더욱 희멀겋게 보이는 손가락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차가운 은빛의 젓가락을 끼워 잡고 쿰쿰한 김치와 새콤한 홍어 무침 사이를 배회하다 흰쌀밥을 조금 들어 입속에 집어넣고는 오물거렸다.


"그래서 대체 이유가 뭐니?"


통통하게 살이 붙은 갈빗대를 손에 쥐고 커다란 송곳니를 내어 고기를 짓씹는 입술이 아주 번들거린다. 의문형으로 끝맺었지만 의중을 묻는다기보다 적절한 답안을 내놓으라는 듯한 단호한 잇새 사이로,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이 끔찍하다. 그는 고민한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주 오래전부터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기나긴 서술을 할 것인지, 갈빗대를 잡고 항복을 할 것인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면 다갈색의 식탁은 재판장이 될 것이며 기름기가 잔뜩 묻은 건너편의 숟가락은 판사 망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내리 깐 속눈썹의 그늘이 뺨 위에 내려앉아 그의 깊은 수심을 드리운다. 잠시간의 정적에 판사 망치가 달그락거린다.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갈빗대를 집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예비 피고인의 항복은 예삿일이다. 그는 왼손을 내려 주머니 속 작은 알약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화창한 공휴일 낮의 점심시간의 급체는 일상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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