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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Aug 29. 2022

선글라스와 팬데믹의 상관관계

초단편 소설

때는 바야흐로 물기를 머금은 파릇파릇한 고추들마저 고개를 푹 숙이고 쪼그라들게 만든다는 강렬한 뙤약볕이 마구잡이로 들이치는 한 여름의 PM 2시였다. 아무리 팬데믹 시대라 한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지독한 날씨에 KF94 검정 마스크와 푹 눌러쓴 검정 벙거지 모자에 검정 선글라스 라니. 지독한 날씨 위에 독한 새끼다. 시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들이며 검정 사나이에게 다가갔다. 깊게 팬 미간 위로 송골송골 맺힌 땀이 낙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친. 코로나 전에 열사병 걸려 뒈지시겠어요"


가까이서 보니 더 가관이다. 그리 얇지도 않은 벙거지의 이마 부분엔 땀으로 인해 짙은 얼룩이 번져있었다. 마스크의 양 볼도 젖어드는 게 꽁꽁 싸맨 얼굴 안은 이미 홍수가 난 듯했다.


"네가 이렇게 까지 건강을 신경 쓰는지는 몰랐는데. 근데 선글라스랑 코로나랑은 대체 뭔 상관이냐?"


"아, 아니..그게 아니구우"


시아는 까드득 얼음을 씹으며 짝다리를 짚고 검은 남자를 올려다봤다. 시아보다 15㎝는 더 커다란 남자는 제 두툼한 손가락을 엮으며 말을 더듬었다. 목소리가 잔뜩 갈라지고 잠겨있는 게 막 자다 일어난 사람 같았다. 아니면 어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거나. 그런데 소리를 지를 일이 뭐가 있니. 콘서트라도 다녀왔니. 노래방을 갔니? 온종일 집에 있었다는 것 같았는데. 아니면, 울었나?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시아는 남자의 팔목을 잡아끌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상가 건물들 사이에 음식물 쓰레기가 모여있는 으슥하고 냄새나는 골목길로 들어가 조심히 선글라스를 내렸다. 에구머니나. 퉁퉁 부어 거의 떠지지 않는 벌건 눈에는 아직도 투명한 물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샤프한 턱선을 가진 남자의 무쌍은 매력 포인트지만 조금이라도 붓는 날에는 인상이 확 바뀌어 버린다. 퉁퉁한 눈이 꼭 붕어 입술 같다.


"아니, 어제 나나..끅..재탕,,,,, 렌이....크흑.....그랬..는데 눈이 너무..흐윽..아빠...형..흑"


어제 슬픈 만화책을 보다 울어서 눈이 부었는데, 집안에 아버지와 형이 다 큰 남자 새끼가 울었다는 이유로 한심한 눈빛을 보낼 것이 분명하여 저리 꽁꽁 싸맸다는 말이다. 커다란 손에 들려진 휴대폰 화면은 밝기를 제일 어둡게 해 놨지만, 어제 봤다던 만화책의 주인공들이 얼핏 보였다. 제 집안에서 금기시된 감정을 밖에서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학습화된 의무감과 그럼에도 재탕에 삼탕까지 하며 충실히 욕망을 좇는 모습의 괴리에 웃음이 나왔다.


팬데믹의 이로운 점은 단 한 가지가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얼굴을 꼭꼭 숨길 수 있다는 점. 누가 세운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이라도 기준에서 벗어나면 비주류나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좁은 마스크 속 편한 숨을 얕게 뱉을 수 있다는 점. 시아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를 톡톡 닦아주었다. 남자는 시아의 손을 잡아 코 앞에 가져다 대고 시원하게 코를 풀었다. 아 진짜. 더러워.


남자와 시아는 마스크를 벗고 선글라스를 모자 위에 걸쳐 쓰고 으슥한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냄새가 좀 나긴 해도 볕도 안 들고 사람도 없고 나름 지름길이니까. 남자의 널따란 어깨가 한층 가벼워 보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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