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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May 27. 2023

사랑을 기억하는 법

환상통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존재는 아이돌일 수도, 나를 결코 사랑할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의 맹목적이고 기묘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은 허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담으려 애쓴다. 말로써, 글로써, 사진으로써, 영상으로써, 혹은 그의 행적을 쫓으며 간접적인 체험을 하기도 한다. 온전히 손아귀에 쥘 수 없는 허상이라는 점에서, 기억과 기록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부단한 그들의 노력은 필연적인 행위나 다름없다.


기억은 불완전하므로 영속성이 없다. 기록은 찰나의 순간,  공기의 흐름은 어땠는지, 심장 박동의 세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부서지는 햇살 아래 부유하는 먼지들의 빛깔은 무슨 색이었는지, 살랑이는 바람에 꽃내음이 실려왔는지, 뜨거운 열기 아래 축축한 땀 냄새만 부유했는지, 손을 흔든 건지 머리를 긁적인 건지, 나를 응시한 건지, 나는 그저 배경일뿐이었는지, 긴장에 메마른 입안이 까끌까끌했는지, 흥분에 침이 고였는지, 사위가 고요했는지, 귀가 먹먹했는지.....  여타 다양한 감각과 감성과 의미를 프레임에 담거나 언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러나 말하면 말할수록 언어가 이미지를 덮어버리고, 내게 충격으로 남은 그 모습은 눈물에 씻기는 유릿조각처럼 녹아내리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이미지가 오염되는 걸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내가 체험한 순간의 환희를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을 뿐이지요.

이희주,『환상통』, 문학동네, p22.



나는 어제의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일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 기억해 내려면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는 식재료를 확인해야 하고,  년을 같은 길목을 걸어 출퇴근하는데도 어떤 상점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퇴근 중에 문득 발견한 것이 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벽에 나무가 솟아있는 것이다. 수십 번의 계절을 걸으며 처음 본 낯선 나무였다.

 


좁은 틈을 비집고 자라난 나무가 대견하기도, 모양이 어떻든 그저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는 것이 숙명인 듯 구불구불 솟은 뚝심이 대단하기도 했다.

단신의 왜수는 내가 걷는 길 전방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보지 않으래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쥐색의 벽, 갈매색과 고동색이 혼합된 식물은 너무도 흔 배경이 되어 버렸다. 시야에 걸리지만 기억할만할 가치가 없는, 부산물이나 이물질 같은 존재 뿐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나의 걸음과 함께 했었을 그가 생면부지의 이방인이 된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고자 하는 것만 기억한다. 그 속에는 오독과 오해, 오판과 퇴색이 같이 한다. 나도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아마 있을 것이다. 아니, 있었나?


첫사랑이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입술이 굳어 떨어지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그의 미소에 온몸에 열기가 오르고 폭주 기관차를 가슴에 품었었지만 이것은 보통 동경이라 불린다. 중학생 때 좋아했었던 친구와 러브장을 교환하고, 잠시 맞잡았던 부드러운 손을 생각하며 밤잠을 설쳤지만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싸인 우정이었음을 안다. 고등학생 때는 사랑의 대상이 수시로 바뀌었다.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은,  화려하고 생소한 분홍빛 모빌을 좇는 아기처럼 따라가기 바쁜 활동이었다. 오직 호기심과 시기심으로 비롯된, 그러니까 보통의 십 대를 보내자는 옹골찬 다짐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후의 사랑은 거무죽죽하고 짙붉다.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를 사랑했다.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고 부족했다. 허기는 불안이 되고, 불안은 나를 갉아먹었다. 집착과 불신, 못된 상상이 가득한 사랑은 분홍빛이 아니라 혼탁한 자줏빛이었다. 공허와 불안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치환되었을 뿐이다.


톺아본 내 인생의 사랑은 이렇다.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다. 매일의 사랑이 질척한 늪 속과 같지는 않았을 거다. 난파된 기억의 뱃조각을 끌어올려 들여다보면, 연신 호선을 그리던 입술과 간지러운 웃음소리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뭉뚱그려 쥐어 보면 검었던 마음이 파스텔톤의 색깔을 감춰버리는 거다.


사랑은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사랑이 허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 끝에 내가 택한 것은 찰나의 아름다움을, 그 안타까움을 받아들이는 쪽이었어요. 한순간을 미련 없이 사랑하자. 그리고 떠나보내자. 사랑을 그냥 사랑 그 자체로 두고 어떤 의도도 개입시키지 않기로 한 거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처음에 느꼈던 솟구치듯 사랑하던 감정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이희주,『환상통』, 문학동네, p24.


내 협소한 기억의 문제는 오독과 사랑하지 않는 것에 있다. 연민에 사로 잡혀 모든 행동의 의미를 재구성하여 판단다. 불안과 불신의 근간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바닥을 보며 걷는다. 정면을 응시하더라도 청록의 세상은 부옇게 블러 처리된다. 풍경을 사랑할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맹목적이고 기묘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는 사랑은 핏방울처럼 붉다. 온전히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유난스럽더라도 선명하다. 사랑을 기억하는 법은 어떤 기록이 아니다. 타인과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는 법. 그전에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방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장하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익숙한 거리에서 낯선 것을 눈에 담고 보고 걷는다. 내일 잊으면 다시 한번 눈에 담고 살펴본다. 거울 속 내 모습도 들여다본다. 시나브로 스며들어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알아채기를, 문득 고개를 들어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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