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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May 29. 2023

카타르시스의 쾌감

Feat. 웹소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수선스러웠던 하루가 허망하게 느껴지는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공허의 시간을 견디기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있다.

1. 거실의 불을 끈다.

2. 커튼을 닫고 빛과 소리를 차단한다.

3. 안락의자에 누워 최적의 자세를 갖춘다.

4. 핸드폰을 열어 웹소설 플랫폼에 들어간다.

5. 태그를 입력하여 검색한다.

#짝사랑 #삽질 #소꿉친구 #친구에서 연인

 

평소에는 로맨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도 로맨스 장르에 큰 흥미가 없다. 특히 영화는 심리 스릴러 따위를 즐겨보는데, 약간의 핑크빛을 띠면  고조된 감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몽글몽글한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없음에도 유독 로맨스 웹소설에는 깊이 매료되는데, 장르적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웹소설은 대부분 주제가 명확하며 스토리의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독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감정을 쉽게 내어준다.


내가 로맨스 웹소설을 읽는 이유는, 달달한 로맨스만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주인공의 아픔과 슬픔, 몰락을 보기 위해서다. 특히 이어질 가망성이 적거나 어쩌면 지금의 관계가 더 나을 수 있는 친구, 낡은 통념 속 금단의 관계라 여겨졌던 같은 성별 내지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의 간극,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 때문에 가망이 있어도 마음을 억누르는 주인공의 황폐한 감정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그리스어로 정화(淨化), 또는 배설(排泄)의 의미를 가진다. 즉, 감정이 순화되거나 깨끗해지는 일종의 승화 작용이나 정서적인 불순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의학적 작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억압될 경우 언젠가는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는 감정을 위험 부담 없이 안전하게, 관례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출하도록 하는 도덕적 기능을 드라마에 부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타르시스 (스토리텔링이란무엇인가, 2014. 4. 15., 김정희)



고된 풍파와 시련을 겪은 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보통은 이러한 대목에 전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슴 아픈 주인공의 고난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 예를 들자면 친구를 사랑하는 감정이 곧 터질 풍선처럼 커진다. 비단 마음뿐만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애욕愛慾에 친구를 피한다. 친구는 상처를 받고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주인공은 마음을 숨기기 위해 사라져 버리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의 감정선은 과할 정도로 처절하다. 그릇된 욕망으로 인한 자기 비하와 수많은 억측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장면에서 고통과 함께 묘한 쾌감을 갖는다.


카타르시스의 핵심은 자기 연민에 있다. (스스로 느끼기에) 비정상의 범주에 있는 자신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상의 녹록지 않음에 깊은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주인공이 타인에게 표출하지 않고 홀로 끙끙 앓으며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혁명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는 철저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청소년기 자아 중심성의 한 분류인 개인적 우화와 관련이 있다 본다.


개인적 우화는 청소년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에 대한 경험과 타인의 생각을 너무 과다하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또 하나의 특징적인 자아 중심적 경향성이며, 자신의 경험은 너무나 독특하여 다른 이가 알 수 없다는 믿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와 헤어진 남자 청소년은 자신의 이 아픈 마음은 세상에서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세상 사람 거의 누구나 경험하는 일임에도 이들은 줄곧 “엄마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청소년기의 개인적 우화 현상은 특히 이들의 일기에서 잘 드러난다. 청소년의 일기나 개인 홈페이지에 쓰인 글에는 종종 자신의 경험과 좌절, 고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소년기 자아 중심성 [adolescent egocentrism]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모든 카타르시스가 아니고, 내가 특정하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그렇다는 말이다. 성숙한 어른의 로맨스보다 보통 청소년의 현대물을 즐겨 접하는 이유도 동일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나의 미해결 과제를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다. 비련의 주인공들은 나와 닮아 있다. 세상이 너무도 커다랗고 나는 무언가 남들과 달라 외롭다. 무엇이 다른지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 '특별'이 아닌 '이상한' 존재라 여긴다. 자의적 고립과 사색은 내 일상의 반복이다.

하지만 미성숙한 내 몸은 너무나 커져버렸고 세상에 부딪혀야 한다.


그렇기에 매일 부딪히고 삶의 굴레를 살아간다. 여기서 오는 허탈감과 피로를 카타르시스를 통해 배출하는 것이다. 아직 아이이고 싶은 욕망, 모든 불행은 다 내게 있다고 외치고 싶은 미숙함, 내 처연함을 전시하고 싶은 충동 등 복잡하고 미묘하게 엉킨 감정들을 다스리는 걸지도 모른다.


카타르시스는 울음과도 연관이 있다. 실컷 울고 난 뒤의 개운함은 누구나 겪어 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카타르시스는 정화 의식이다. 주인공과 동일시를 통해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고 해소한다. 감정의 정리는 좀 더 번듯한 이성이 작동할 수 있해 준다. 

웹소설 작품마다 잘 분류된 특정 주제가 카타르시스 접근에 용이하고, 빠르고, 재미있다. (내 감성과 상성이 맞는다.) 따라서 나에게 웹소설은 스트레스를 푸는 중요한 매개체다.

자신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그 작품이 내포한 어떤 것이 자신의 엉킨 감정을 씻겨주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이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모두가 조금 덜 아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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