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설
이따금 삶이 무용하고 심심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백야 같아요. 경계를 알 수 없는 망망대해 같기도 하고요. 한 움큼의 어둠도 허락하지 않는 백야와 묘연함에 두렵기까지 한 바다 말입니다. 문제는 항상성에 있습니다. 소멸하지 않는 태양과 닿을 수 없는 육지는 몸 안의 수분을 앗아갈 뿐입니다. 탈진할 테지요. 잔뜩 쪼그라들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검은 바다 아래로 몸을 뉘겠지요. 케이. 따듯한 적막이 두렵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산 아래에 위치한 빌라에는 볕이 들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녹음이 괴물의 아가리처럼 건물을 집어삼키는 중이었습니다. 금 간 벽돌과 축축한 음습함이 깃든 집. 마른기침이 끊이질 않는 먼지 가득한 집. 높다란 아파트들을 둘러싼 성벽 뒤편에 외따로 불쑥 솟은 집. 왠지 별 중요치 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그 빌라로 가기 위해서는 좁고 길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아주 어두웠습니다. 아파트 쪽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 불빛이 골목을 더욱 컴컴하게 만들었지요. 전봇대 뒤편에서 무언가 숨어있다고 한들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든 유령이든 무엇이든지요. 골목 어귀에서 숨을 쉬었습니다. 폐에 큰 숨을 머금었습니다. 몸을 잔뜩 부풀리는 복어나 공작새처럼 가슴을 열고 어깨를 올렸습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성큼성큼 걸었습니다. 뛸 수는 없었습니다. 높은 벽 사이사이에 숨어든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눈치챌 것만 같았기 때문이죠.
삼 분가량의 전쟁터에서 기진맥진한 채로 돌아왔습니다. 붉게 그을린 철문을 열면 나는 쪼그라들었습니다. 쿰쿰한 찌개 냄새와 티브이 소음만 가득한 더운 집에 쪼그라든 채로 굴러 들어갔습니다. 곧 집안의 끈적한 습기가 쪼그라든 나를 흐물거리게 했습니다. 그곳에서 수축과 팽창을 거듭했습니다. 별 중요치 않은 비밀을 간직한 아픈 빌라에서 말이죠.
케이. 이곳은 수축만 존재합니다. 무서운 골목과 음침한 녹음 대신 빛을 머금은 거울의 도시는요. 팽창하지 않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빛에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부서지기 직전입니다. 그곳은 어떤가요? 밤의 도시는 어떤가요? 수면 아래는 어떤가요? 겨울밤의 강가는 어떤가요? 새까만 눈이 내리는 절경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