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사서재

삶의 장소, 유영하기

by 새봄

연고지가 전혀 없는 곳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강산은 안 바뀌고, 살고 있는 곳이 많이 바뀌었다. 하늘이 탁 트였던 거리는, 이제 고개를 위로, 더 위로 해야 빼꼼히 볼 수 있을 만큼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섰고, 저녁에 혼자가기 무서웠던 거리들은 시야가 탁 트이게 정비가 되었으며, 하나 둘 생겨나는 상가에는 길을 걸어가며 둘레둘레 살펴볼 만한 곳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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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대로 인 것들도 있다.여전히 남아있는 골목골목 정든 집, 이사오고 아이를 낳고 오며가며 사귄 이웃들, 입사 때 개관하여 어느새 10년이 된 도서관, 그리고 그때부터 함께했던 동료들이 나에게 남아있다. 매일 야근을 해도 즐거웠던 20대를 지나, 어느새 늘 ‘피곤하다’ 말하는 30대 중반이 되었고, 10년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나 생각해보면, 외부 요인으로 바뀐 것들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인하여 변한 건 “자연”이 더 좋아졌다는 것.


워낙 유명한 길치라 네이버 지도를 켜놓고도 나의 고집대로 틀린 방향이 맞다고 가는 성격이라 새로운 길을 찾아 가지는 않는데, 갑자기 그날따라,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근길에 함께 등원 시킨 남편에게“나 좀 내려줘”라고 말하고 언뜻 봤었던 해리포터의 비밀통로 같았던 그 길을 찾아 나섰다. 마음이 힘들었던 날 혼자 나섰던 밤 산책길에 어둠 속에서 찾았던 산으로 가는 길. 대학교 안에 저런 길이 있다니,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휴무날 아침, 집에가서 누울까 생각했다가 한 번 모험을 떠나보기로 마음먹었다.


늘 아이들과 산책을 했던 잔디밭을 지나, 학교의 작은 연못을 지나, 어르신들께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곳을 쭈뼛쭈뼛 쫓아 올라가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야트막하지만 ‘산’이었고, ‘산’이었지만 계단보다는 모두가 함께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 둘레길이 있었다. 평소 산이라면 정상을 향해 앞만보고 돌과 나무를 밟고 위로만 올라가 흥미를 못 느꼈는데, 어쩜 나 같은 저질체력도 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이 공간을 이 터에 자리를 잡고 근 7 년만에 처음으로 나 혼자 둘레길은 산책하기 시작하였다. 마음과 몸이 답답할 때 아이들 등원 준비할 때 나도 물 한병, 읽을 책 한 권, 에어팟, 그리고 혹시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신용카드 하나 넣은 작은 크로스백을 매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그길로 바로 떠났다.


반나절 남짓 나 홀로 떠난 모험은 볕뉘아래서 읽는 책의 맛, 고롱고롱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에게 서 느끼는 여유의 맛,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아닌, 맑고 고운 새들의 노래의 맛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줄 작은 선물이나 과일을 사들고 오면

뿌듯함까지 함께 따라왔다.


밖에서 느끼는 초록의 위대함을 충분히 알았기에, 그 이후 집안 곳곳에 있는 식물들에게도 애정을 듬뿍, 종종 안부를 건넸다. 식물의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맛보았기에 무조건 이 주제는 읽고 보는 키워드에 “도서관, 책, 독서, 서점” 외에도 “식물”이라는 키워드가 더 늘었다.


2022년 여름의 끝자락, 무더위가 기승이었던 8월에 만나 어느새 서늘한 가을바람이 느껴진 10월에 끝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식물과 함께하는 일상 속 인문학” 주제가 식물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첫 시작하는 주엔, 아이들의 코로나, 두 번째 탐방 가는 주엔, 둘째의 폐렴, 마지막 후속 모임 날엔, 이전부터 계획된 제주도 가족여행과 겹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책에 젖듯 식물에 스며드는 시간이 되실 거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신 서울 식물원 담당자와, 테스트할 때는 이상 없다가 강연 시작과 함께 속 썩인 컴퓨터에 재치 있게 넘겨주신 수목원 대표님,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강연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라고 했던 교수님, 도서관 강의 중 답십리도서관이 최고였다고, 사랑한다고 해주신 작가님, 그리고, 10회차 모두 참여하며 따뜻한 말 건네주신 참여자분들, 이 모두가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앞으로 더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2022년 늦 여름, 초 가을의 추억이 나를 더 식물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특히 후속모임으로 진행하였던 화분만들기. 새벽에 공수해오셨다는 스키답서스를 맨 손으로 뿌리와 흙을 분리하고 수경재배 화분으로 만드는 시간이었다.손으로 직접 흙은 만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집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분갈이를 했을 때도 비닐장갑 꼭꼭 끼고 했었는데, 이렇게 맨손으로 흙을 만져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흙의 입자를, 식물의 뿌리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한 생명을 위해 '살살-' 어루만졌던 그날, 그날 이후로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날 “우리 재경이 잘 부탁해요!”라고 하셨던 정재경작가님의 「우리집 식물 수업」 은 ‘집에 식물을 두는 게 맞을까? 되려 유해균이나 아이들 안전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우를 없애주었으며,‘식물은 우리 곁으로 와서 과연 행복할까?’라는 엉뚱한 생각에 권정민 작가님의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식물을 좀 더 소중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으며, 길가에 지나가다 마주친 ‘잡초’에 대해서도 기특한 마음을 갖게되는 이순옥 작가의 「틈만나면」 은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또한 식물과 사람간이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 가 필요하다는 전소영작가의 그림책을 보고 끄덕끄덕하며,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내의 삶의 모습과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점점 더 좋아진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장소도, 내가 정을 붙이고 있는 것들도.

이제 이곳이 나의 연고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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