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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미세한 공기의
온도 변화를 감지하다

final S4000

by 범노래


* 셰에라자드로부터 콘텐츠 제작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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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널 S시리즈


제가 알고있는 모든 음향기기 브랜드 중에 가장 열린 자세로 사운드에 접근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브랜드가 파이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파이널의 라인업은 저마다 다양한 금액대와 색다른 접근 방식으로 무장하여 독보적인 개성을 갖게 되었지요. 파이널이 이다지도 빠르게 음향기기 명가로 자리잡게 된 이유에는 이런 적극적인 연구개발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자칭 파이널 전문가로서 이 라인업들을 한번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시리즈 : 헤드룸을 가득 채운 온화한 부드러움

A시리즈 : 높은 해상력과 공간 연출에 눈을 뜬 당신을 위해

B시리즈 : 개발자의 의도가 적극 투영된 한 장르 마스터 (B1 - 올드팝, B2 - 콘서트홀, B3 - JPOP)

ZE시리즈 : 무선 이어폰만이 가능한 공간 연출로 입체감과 몰입감을

D시리즈 : 풀사이즈 헤드폰으로 선사하는 헤드파이 최고의 사운드

UX시리즈 : 생활 밀착형 무선 헤드폰

VR시리즈 : 게이밍 특유의 3D 공간을 연출하는데 공을 들이다

MAKE시리즈 : 유저가 직접 사운드를 튜닝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이어폰


이번에 S시리즈가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아직 S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저만의 소개 문장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본사의 설명을 가져와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생기는 깊은 감정 변화에 주목하고, BA 드라이버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 시리즈'


음... 의도는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소리가 들린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S시리즈의 사운드 정리는 S4000 / S5000 모델을 둘 다 체험해보고 나서 결론을 내려야 될 것 같습니다. 본사 사이트를 훑어보니 현재 출시된건 S4000 / S5000 두 모델인데, 국내엔 S4000이 먼저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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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시리즈의 후예


지금은 본사 사이트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싱글 BA 드라이버의 강점을 최대한 끌어내는 F시리즈 라인업이 존재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이어폰' 이라는 제목의 리뷰를 작성한 기억이 있군요. 제가 볼 때 파이널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S시리즈는 F시리즈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F시리즈의 개량 및 진화형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근거는 S시리즈 역시 싱글 BA같은 구조의 2BA 이어폰이고, 싱글 BA만이 줄 수 있는 사운드를 극한으로 끌어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입니다. 싱글 BA의 강점은 정갈하고 깔끔한 사운드를 집중력 있게 전달한다는 겁니다. 수수하고 담백한 사운드라고 할까요. 멀티 드라이버로 갈수록 소리가 입체적이고 화려한 만큼 정신이 분산되는 느낌도 있기 때문에 싱글 BA 특유의 간결함을 좋아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반면 단점은 대역폭이 넓지 않아 일부 음역대에 국한되어 있으며, 공간이 평면적으로 연출되는데다 저음 울림이 약해서 앙상하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어째 단점이 더 많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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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시리즈는 이런 단점을 파훼하기 위해 여러 방편을 강구했습니다. BA 2개를 딱 붙여 하나로 만든다면 음의 힘과 두께를 보강할 수 있게 됩니다. 또 BA 드라이버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노즐로 전달되는 그 과정을 일반적인 방식인 튜브로 연결하지 않고 방(챔버)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공기와 소리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보다 입체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하게 되었고, 울림 또한 훨씬 풍성해지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작고 가벼웠던 F시리즈와 달리 울림통이 커지고 무게도 무거워졌습니다. 그만큼 소리 역시 묵직함이 더해졌지요.


F시리즈는 전형적인 싱글 BA 사운드가 나왔기 때문에 아주 가늘고 섬세한 단독 악기 재생에만 추천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성 보컬이나 피아노 독주같은 장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S4000은 여러모로 장르에 딱히 제한이 없는 소리가 됐어요. 아마 여러분이 예상하는 싱글 BA 소리가 아닐겁니다.


두번째 근거는 성능과 금액대입니다. S4000의 판매 금액은 589,000원으로 4000 넘버치고 꽤나 금액이 높은 편입니다. F시리즈의 포지션도 이 정도에 포진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따라서 이 제품은 가성비가 좋고 대중을 타깃으로 한 A시리즈나 E시리즈에 비해 더 소수의 유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상급 라인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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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미답의 세계로


제가 파이널 제품 리뷰할 때 자주 꺼내는 말이긴 합니다만, 파이널 특유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운드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운드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마음을 활짝 열고 마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과거 몇 차례 이런 경험이 있으니 이제는 좀 적응이 된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엄청나게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S4000은 충격적으로 이질적인 첫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이 제품을 파악하려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자신있게 주장컨대 파이널은 음향기기 명가이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한놈만 걸려라 하고 제품을 내놓는 브랜드가 아닙니다. 진득하게 파고들어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면 ????에서 !!!!으로 바뀌는 마법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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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세함의 방향


파이널에서 가장 소리가 독특한 두가지 제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ZE8000과 Piano Forte를 얘기하겠습니다. ZE8000은 엄청나게 짙은 저음의 안개 때문에, Piano Forte는 피아노를 제외한 모든 악기 소리가 이상하게 뒤집혀 들리며 뭔가 웅얼웅얼거리는 듯한 울림이 가득하다는 점 때문에 악명(?)이 높았지요. 그런데 S4000이란 이 이어폰은 앞서 말한 두 모델에서 느껴졌던 독특한 사운드의 특징을 각각 품고 있습니다. 짙은 저음의 안개가 서려있으며, 묘한 울림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ZE8000 / Piano Forte 어느 한쪽과 소리가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그 둘을 섞었더니 또 다른 방식의 난해함이 탄생해버렸어요.


S4000의 첫인상은 대체로 '먹먹하다' 일겁니다. 금액에 비하면 이상하리만큼 해상도가 낮게 느껴지고, 그 중에서도 저음은 특히나 낮게 느껴집니다. 거기서 이어폰을 내려놓는다면 아쉽게도 이 제품의 진가를 알아챌 수 없습니다. S4000은 굉장히 섬세한 이어폰인데, 그 섬세함의 방향이 보통의 해상력이 아니라 음이 다음 음으로 넘어갈 때의 그 미세한 변화에서 풍겨지는 뉘앙스에 꽂혀있습니다. 음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갑자기 실내 온도가 2도 정도 낮아진 것 같다', '장내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이 표현들은 실제로 온도가 변하는 것을 확인하거나 측정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현장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수사법일 뿐이지요. 이런식으로 공기의 온도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 그 상황을 훨씬 더 적나라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이어폰은 분위기 묘사에 매우 탁월하며, 아주 미세한 분위기의 변화도 감지하여 드라마틱하게 강조합니다. 다른 말로는 음악성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대놓고 음악성만을 추켜세우는(?) 음향기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S4000은 파이널의 모든 이어폰 중에 가장 음악성이 진하고 뛰어난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자체적으로 선정한 음악성이 뛰어난 이어폰 리스트 TOP3 안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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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음악성이 진해지게 만들 수 있는가...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질은 고성능(고순도)의 부품을 쓰면 되고, 신호 전송 과정에서 유입되는 노이즈를 최대한 차단하는 식의 어느정도 정답이 존재합니다. 공간감/현장감 역시 최대한 내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우징을 설계하거나 소리의 전달 속도에 변화를 주어 가공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음악성은 대체 어떤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감도 안잡힙니다. 그러니 이런 이상한(?) 제품이 나오게 되는 거겠죠.


이 제품은 엄청나게 디테일한 음악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취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다만 취기가 오를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사람을 만날 때 4계절 변화를 함께 겪어보라며 기간을 넉넉하게 두는 것처럼 이 제품에 담긴 의도가 전해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인 뒤 평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신기한건 S4000에 완전히 적응이 되면 첫인상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무 문제없어진다는 겁니다. 다른 이어폰을 들었다가 다시 들으면 거짓말같이 되살아나긴 하지만요.


디테일한 음악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는 말은, 다른 평가 요소에서는 점수가 높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실제로 적혀있는 문장 내용보다 그 행간의 의미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긴 하죠. 그러나 그게 일반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이어폰이 주는 위화감은 그런것에서 비롯된다고 봐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써내려온 글의 뉘앙스를 보면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이 이어폰은 듣는 이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겁니다. 저처럼 음악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분들에겐 인생 이어폰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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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이어팁 Fusion G


파이널을 대표하는 실리콘 이어팁 Type E에 이어 새로운 이어팁이 등장했습니다. Fusion이라는 이름답게 폼과 실리콘의 성격을 둘 다 갖고 있는데, 제가 볼 때 실리콘보다는 폼 쪽의 사운드가 더 강합니다. 구경이 넓은 만큼 음이 한 점에 집중된다기보다 넓은 면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고, 소리와 소리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줍니다.


폼팁 특유의 먹먹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낮은 밀도감, 그로 인한 시원한 개방감도 큰 특징입니다. 파이널 E팁이 밀도를 높이고 고음을 부드럽게, 저음을 풍성하게 만들면서 소리에 탄력을 더하는데, 그와는 꽤나 반대되는 성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S4000의 사운드를 들으면 이게 싱글 BA라고?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거기에 Fusion G 이어팁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이어팁 별도 판매 시작되면 하나 구매해야 되겠습니다. 아주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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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라이크


게임에 '소울'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다크소울이라는 한 게임이 가지는 특수한 게임성 때문에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고 있지요. 다크소울에 나오는 모든 적들은 말이 안되게 강하기 때문에 뭔가 불합리한 난이도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며 도합 수백번 죽는게 아니라 단 하나의 적에게도 수백번 죽을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게임들은 적들을 잡고 경험치를 얻어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시스템이지만, 소울 장르의 게임들은 적의 행동 패턴을 읽고 주어진 대응책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증가되는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매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며 게임을 하게 되고, 미친 것 같은 난이도의 적을 격파하게 되면 그 성취감 또한 대단합니다.


파이널의 상급 라인업들을 음향 업계의 소울 장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냥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에 상급이 아니라 듣는 이에게 더 높은, 조금은 다른 차원의 음악 감상법을 제시하여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에 상급으로 책정된 것입니다. 원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초급에서 벗어날 수록 스스로 답을 찾게 되어 있는 법이니 사실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파이널 S4000은 다른 모든 것보다 ‘소리의 미묘한 변화로 빚어지는 뉘앙스’에 집중하고 있는, 아주 의도가 명확한 고성능 이어폰입니다. 헌데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공감하지 않으실 수도 있고, 이해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들께 Piano Forte를 소개할 때도 그랬고 ZE8000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부디 제 글이 제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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