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MAN ANANDA UNVEILED
- HIFIMAN
하이파이맨은 전자음향학 전문가인 Dr.Fang Bian(비엔방) 박사가 2007년 미국 유학시절 설립한 중국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입니다. 주력은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으로, 지금에야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 헤드폰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지만 이 브랜드가 설립될 당시에는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를 채용한 브랜드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의 오디지만이 떠오르는군요. (오디지의 설립은 2008년으로 하이파이맨이 1년 더 빠름)
과거부터 다이내믹 드라이버보다 뛰어난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의 장점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었지만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의 핵심인 진동판의 두께가 엄청나게 얇기 때문에 제조가 어렵고, 그만큼 내구성 또한 좋지 않아 상용화가 어려웠다고 하네요. 스스로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부흥 운동을 벌였다고 할 만큼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에 대한 높은 이해가 뒷받침되고 있는 브랜드이며, 그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증거로 수많은 수상경력과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리뷰할 때 자주 참고하는 일본의 유명 음향 어워드 VGP에서도 수상작이 많지요. 보통 차이파이(중국 브랜드) 제품들이 엔트리급, 가성비, 입문기 부문에서 수상하는 것과 달리 이 브랜드는 프리미엄 급 이상, 끝판왕이라 말할 수 있는 하이엔드 등급에서 수상을 하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트리나 미들은 몰라도 프리미엄 등급에서 차이파이는 아직 안돼' 이런 시각을 타파하는데 공헌한 브랜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사실 이 브랜드의 인지도는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만 저는 셰에라자드 재직 시절에 'Svanar Wireless'라는 무선 이어폰만 들어봤습니다. 이때도 범상치 않은 기운은 느꼈는데요, 무선 이어폰 중 가장 높은 해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카테고리에서 최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그 브랜드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에도 하이파이맨 제품들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었지만 2025년에 한국 지사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한국 지사가 있는 해외 브랜드가 몇개 없습니다. 하이파이 브랜드는 많은데 포터블 하이파이 브랜드는 소니, 젠하이저, 보스같은 초대형급만 떠오르는군요. 그만큼 규모가 크고,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ANANDA UNVEILED
하이파이맨의 제품 중 다수는 산스크리트어(한국에서는 범어로 불림), 불교에서 등장하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아난다는 붓다의 사촌동생으로 붓다의 시중을 드는 승려였습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는 시자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또 인간의 내면의 살피는 정신 수양 운동, 즉 명상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음향기기 취미란게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이며, 내면과 깊은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꽤 의미 깊은 모델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난다 언베일드는 풀사이즈 오픈형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이고 금액은 763,000원입니다. 평판 자력형 헤드폰이 고급 헤드폰에서 주로 사용되는 만큼 평판 자력형 헤드폰 중에서는 엔트리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에서 주로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가 사용된다고 설명드린 만큼, 그간 제가 경험한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의 금액대는 100~500만원 사이의 초고가였습니다.
2018년에 출시된 ANANDA의 후속작으로, 주요 변경점은 4개입니다.
1) 그릴 삭제 (언베일드), 완전 개방형
2) 기존대비 60% 두께의 얇은 진동판
3) 더 강력한 자석 채용
4) 개선된 헤드밴드
임피던스는 22옴, 재생 주파수 대역은 5Hz ~ 55kHz로 굉장히 넓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음향기기들의 재생 주파수 대역이 20Hz ~ 20kHz인 것에 비하면 상대가 안되지요. 물론 저는 이렇게 제조사에서 제공한스펙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안들리는 제품들이 많아서요. 어쨌든 사운드 얘기는 아래의 사운드 파트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지요.
- 디자인
이 브랜드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그릴이 빠진 언베일드라는 용어를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은 많았지만 실제로 처음봐서 신기했습니다. 드라이버가 밖에서도 훤히 보이니까요. 근데 신기한건 둘째치고 헤드폰을 손으로 잡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혹시나 손가락이 드라이버에 직접 닿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요.
무게는 449g으로 일반 헤드폰에 비해서는 무겁지만 평판 자력형 헤드폰 중에서는 가벼운 편에 속합니다.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구조상 진동판 앞뒤에 무거운 자석을 덧붙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중요한건 무게 분산인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제품이 옆으로 잘 안벌려져서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사실 가동범위가 넓다는 것은 내구성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나중에는 오히려 좋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패키지는 다소 단촐한 편입니다. 요즘 포터블 하이파이 전체적으로 패키지가 간소화되는 추세이긴 해도 차이파이 브랜드들은 유달리 고급스럽거나 풍성한 구성품을 제공하는 이미지였는데, 서서히 차이파이 브랜드에서도 그런 변화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라 봐도 될 것 같네요.
- 사운드
1) 음질 특화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투명성, 해상력, 분리도, 깨끗한 느낌이 일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다이내믹 드라이버에 비해 음질적인 장점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확실히 고급 헤드폰 그룹에 속하려면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를 채용해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완전 개방형, UNVEILED
일반적인 개방형에 비해 개방도가 더 높습니다. 일반 개방형 제품은 창문을 반만 열어놓았다는 느낌이고, 이 제품은 창문을 완전히 열어놓았다고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덮개를 덮고 소리를 재생해봤더니 아주 실망스러운 사운드가 나왔습니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똥같은 소리였어요. 역시 개발자의 의도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이 다이내믹 드라이버 헤드폰에 비해 공간 표현이 협소하고, 울림이 작은 편인데 이 제품도 거기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다만 엄청난 개방감으로 공간감을 커버하고 있어 점수를 어느정도 만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역시나 고음 우대
차이파이답게 이 제품도 역시 고음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고음과 중음, 그리고 저음의 비중은 4:3:3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차이파이와 다르게 고음의 느낌이 차분하다는 굉장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브랜드가 하이엔드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기품과 품격을 갖춘 고음입니다. 날카롭거나 가볍거나 방정맞다는 느낌이 없어요.
저음이 풍성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모자라진 않습니다. 다만 분위기는 고음과 확실히 다릅니다. 고음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화려하고, 저음은 담백 & 수수한 편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4) 귀에 쏙쏙 박히는
포터블 하이파이의 하이엔드 제품 중에서는 하이파이의 사운드를 지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포터블 하이파이와 하이파이의 사운드의 지향점이 꽤 다르기 때문에 뭔가 귀에서 멀게 느껴지고, 분위기 자체가 약간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제품의 사운드는 귀에 쏙쏙 박힙니다. 헤드폰의 넓은 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어폰만이 갖고 있는 특징인 귀에 쏙쏙 박히는 사운드 역시 충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폰대비 헤드폰의 여유롭게 소리가 다가오는 느낌을 더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을 수 있는 사운드 특성입니다.
5) 구동이 어렵지 않음
어지간한 헤드폰은 헤드폰 앰프를 연결하면 더 좋은 사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헤드폰 앰프를 연결하는 두가지 조건이 있는데, 하나는 이어컵의 사이즈가 귀를 덮고도 남는 풀사이즈 크기일 때, 다른 하나는 사용된 드라이버가 평판 자력형일 때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들은 임피던스에 상관없이 앰프를 연결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지요.
그런데 최근에 70만원 전후의 엔트리급 평판 자력형 드라이버 헤드폰들을 몇개 들어봤더니......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이들 제품 중에서는 헤드폰 앰프를 그렇게 타지 않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 제품 역시 앰프의 영향을 그렇게 많지 받지 않는 편이라 부담이 적습니다.
6) 집착하지 말지어다
저는 종교가 따로 없지만 각 종교의 교리, 기본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는 공부를 좀 해두고 있습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인생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 경중은 집착 정도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 브랜드가 불교 용어를 많이 썼다는 것은 그런 불교의 가르침을 어느정도 제품에 녹여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요.
제가 봤을 때 이 헤드폰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뛰어난 음질과 그것을 부드럽게 이어주며 흐르는 편안한 분위기, 시원하고 투명한 개방감 등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것에 딱히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재생할 뿐, 이런 뉘앙스가 강해요. 보통 가진게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걸 드러내게 됩니다. 어떤 제품의 강점이 있다면 그걸 강하게 어필하기 마련인데 이 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 저는 대단히 높은 경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쉽지 이 경지에 도달한 음향기기 브랜드가 별로 없습니다.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게 느껴지지 않아야 합니다. 굉장히 역설적이지요. 이렇게 무언가 내려놓고 편안한 표정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운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명상'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잘 지은 이름이네요.
- 정리
왜 하이파이맨이 명성이 높은지,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단점을 딱히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운드의 완성도 자체가 높았어요. 아난다 언베일드가 이 브랜드내에서는 엔트리 레벨에 불과한데도 이 정도라면 더 상위 모델들은 얼마나 대단한 사운드가 나올지 상상이 안됩니다. 앞으로도 하이파이맨의 다양한 헤드폰을 리뷰해보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