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영자로 일했던 스타트업이 있다. 종합 마케팅 에이전시였고, 창립 멤버인지라 어떻게든 일을 벌이고 뛰어다녔다. 생각해 보면 ‘창립’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뭔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대부분 피곤하고 서글픈 장면의 연속이다. 하지만 유독 하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사건이 있다.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 어느 건물 지하 사무실을 빌렸다. 열심히 집기를 채워 넣고 구색을 갖췄다. 그런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둘러보곤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무실 한쪽 벽이 너무 하얗고, 넓고,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기왕이면 그 벽이 뭔가 의미 있는 무언가로 채워진다면 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나는 동료들에게 꽤나 비장한 말투로 내가 직접 캔버스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고, 동시에 누구도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스타트업의 장점이다. 중요사항 외에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기) 사실 난 디자이너도 아니고, 미술 전공도 아니지만 왠지 한 번쯤 해보고 싶던 것이 있었다. '엄청나게 큰 캔버스에 내 맘대로 그림 그리기'. 그 꿈을 이룰 때가 온 것이다.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바실리 칸딘스키. A4 용지에 이들의 이름만 붙여도 백만 원은 거뜬히 넘는 가격이 되어버릴 것 같은 그 추상화의 대가들. 나는 그들의 그림을 인터넷에 많이 검색해 봤다. 그들의 작품을 화면으로 보면서, 만약 내가 추상화를 그린다면 어떤 느낌의 작품이 나올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무실 벽을 채울 대형 캔버스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나도 캔버스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가로, 세로 1.7미터쯤 되는 정방형의 거대한 사이즈, 다른 세 개는 세로로 길쭉한 작은 캔버스였다. 작은 캔버스들은 마치 삼면화처럼 연결해서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게 할 심산이었다. 캔버스는 생각보다 비쌌다. 기성 사이즈가 없는 주문 제작이라 그랬나 보다. 가격을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오랜 시간 머물 사무실을 꾸미는데 이 정도 투자쯤은 마땅하다 생각하며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설렘이 시작됐다.
배송 당일, 나는 새벽같이 회사로 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 나는 왠지 특별한 일을 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 비닐을 깔고, 스피커로는 빌 에반스 플레이리스트를 잔잔하게 틀어두었다. 캔버스를 회의실 테이블에 뉘었다. 그림을 그리는 이젤은 없었으므로, 그냥 바닥과 테이블을 번갈아가며 작업했다.
붓은 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천에 도구가 보였으니까. 캔버스를 감싸던 종이 박스 귀퉁이의 거친 면이 눈에 띄었다. 작게 찢어 아크릴 물감을 묻혀 신문지 위에 쓱 그어보았다. 예상 밖으로 괜찮은 텍스처가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나는 바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란색 아크릴 물감을 조심스럽게 짜고, 박스 조각을 잡고 물감을 푹 찍어 짧고 두꺼운 선을 그어가는 방식으로 표면을 메꿔나갔다. 노란색 아크릴 물감은 작은 파도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흔적을 남겼다.
다음은 검은색. 어떻게 칠할까 고민하다가 에어캡, 그러니까 뽁뽁이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포장재였던 에어캡 일부를 잘라 검정 물감을 묻혀 점묘화 비슷하게, 혹은 스텐실 느낌으로 찍어나갔다. 앤디워홀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반복되는 패턴의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실제로 그랬다가 아니라 당시 고조된 내 느낌이 그랬다는 말이다.)
마지막은 흰색. 배송되던 내내 아크릴 물감을 보호하던 스티로폼 박스 한쪽 면을 부쉈다. 적당한 조각을 들고, 이번엔 흰색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적당히 부어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물감이 물렀는지 많은 양이 쏟아져 당황했지만, 수습해야 하는 사람도 나이기에 스티로폼 조각으로 쭈욱 밀었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외계인의 미스터리 서클처럼 알 수 없는 무늬가 생겼다.
의도한 적 없는 우연의 결과물. 하지만 의도한 것보다 더 낫다는 기분. 이쯤 되면 '당황'은 예술을 칭하는 다른 이름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름 그림을 그려본 아마추어 작가라도 된 기분이었다. 약간의 경력을 추가하면 그림을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을 마크 로스코 선생님께서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이겠지만, 내겐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진심이었다.
노랑, 검정, 흰. 단 세 가지 색만을 사용한 그림. 무채색 벽을 배경 삼아 포인트를 주기에는 이보다 좋은 조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다 완성한 후, 나는 캔버스를 조심스럽게 한가한 사무실 귀퉁이 쪽으로 옮겼다. 며칠 동안 건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가 와서 물을 쏟거나, 의자에 걸려 넘어뜨리지 않게 종이에 ‘건조 중! 건들지 마세요.’라 적어두었다.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게, 그럼에도 주의를 줄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벽에 그림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사무실은 전보다 조금 더 우리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사실 대부분의 동료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사무실 풍경 중 기가 막히게 스쳐 지나기 좋은 배경요소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저 그림 내가 그렸어요"라고. 왠지 그건 그림의 매력을 반감시킬 것 같았고, 내가 그린 걸 다시 상기한 순간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그림을 지금처럼 편하게 지나치지 못할까 봐. 그림이라는 건 그린이가 누구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상의 질감이 바뀌는 신비한 예술이니까.
어느 날, 최근 합류한 한 디자이너가 “저 그림 특이한데, 어디서 사셨어요?”라고 묻길래 동묘 시장에서 디깅 해서 어렵게 샀다고 했다. 그렇게 그림들은 그 디자이너에겐 한 재야의 화가가 현실에 부딪혔다거나 하는 이유로 꿈을 접고 시장에 헐값에 내다 판 비운의 명작 비슷하게 되었다.
지금도 난 생각한다. 캔버스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려보면 좋다고. 말도 안 되는 도구로, 즉흥적이게, 거창한 의도 없이, 나름의 표현력을 살려서 마구마구. 그게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는 것으로 보니 괜찮은 작법인 듯하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어딘가에 잘 걸어두기만 하면 된다.
후에 다른 회사로 옮긴 뒤에도, 나는 그 그림을 종종 떠올렸다. 스타트업은 폐업했고, 그 사무실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겠지만 그 벽에 걸렸던 그림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왜 사무실을 정리하며 그림을 벽에서 떼던 기억이 없지?) 어쩌면 벌써 폐기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그 경험이 소중하다. 적어도 빈 벽을 나름의 의미로 채울 수 있었으니. 한편, 박스 조각, 뽁뽁이, 스티로폼이라는 일회용 포장재들이 만들어낸 색감이 꼭 당시 우리 팀의 조합 같기도 했다. 기준 없는 시작점을 함께 통과하며, 우당탕탕 소란 피우다가, 결국엔 조그만 성과를 내기 시작했던 그 조합.
그림을 그리며 나는 한 가지 배웠다. 깊이 생각하고 철저하게 계획하지 않았더라도 그냥 해 보면 때로는 우연함이 나를 도와주기도 한다는 사실. 이 말은, 글에도, 일에도 심지어 요리에도, 운동에도 적용된다. 물론 그 후로 다시 그만한 크기의 캔버스를 주문해서 그림을 그린 적은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취미를 추천해 달라 하면 나는 항상 캔버스 그림 한 번 그려보시라 추천한다. 특히 모든 것이 색칠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려준다.
노란색이든,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당시 내가 선택했던 색이 무엇이었든 고유의 진한 색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벽이 그냥 흰색으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그 공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스타트업의 힘듦의 기억 대신 특별한 시각의 기억으로 그때를 추억할 수 있어서.
그러니, 당신도 한번 그려보길 추천한다. 도구가 뭐든 상관없다. 붓이 없어도 괜찮다. 어쩌면 당신 책상 옆에 있는 지우개나 종이 조각 하나가 당신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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