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롭고 낯선 당신들

by 그랜트 GRANT

교회라는 공간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설교와 찬양이 전부일 것 같은가? 주일의 예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어떤 자리를 늘 묵묵히 채우고 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사람들을 봐왔다. 어느 날은 입구에서 인사를 해주었고, 또 어느 날은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거나, 방송실에서 음향 기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야만 교회의 모습이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을 매주 받는다. 그들은 마치 조명 같았다. 어두워지면 어느새 켜지고 주변을 비추는 것처럼. 어느 날, 나는 내가 그들을 자연스러운 교회의 풍경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콘텐츠에서 본 이야기다. 아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에게 “선생님도 집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이 집이 있다고 말하자, 어떤 아이는 울면서 외쳤다고 한다. “아니야! 선생님은 여기 살아! 선생님은 내 선생님이야!”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갑자기 내가 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들을 '교회에 사는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아갈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물론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일상이 있을 것이다. 출퇴근을 하고, 모임에 참석하고, 병원에 들르고, 취미를 즐기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들은 경건하게 느껴졌다. 왜 나는 그들을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까. 아마도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들이 내 안의 어떤 부족함을 자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마땅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작년 부활절 즈음, 성가대 칸타타 연습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나는 지휘자님으로부터 내레이션 역할을 제안받았다. 과거 목장모임에서 우리 부부의 목자셨던 부부 두 분도 그날 연습에 참여하고 계셨다. 그날도 늦은 시간까지 남아 연습을 이어가시던 그분들에게, 연습을 마친 후 내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정말 피곤해 보이세요. 괜찮으시지요?” 그분은 피식 웃으며 대답하셨다. “네, 아유 힘들어요. 긴 연습 일정을 보내니 이젠 피곤하기도 해요.”


그 말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그들도 피곤하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감추지 않고 말해준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항상 단단하고 변함없어 보이던 모습 뒤에 지극히 인간적인 '피로감'이 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당연히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의 교회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목자님 부부는 우리 부부에게 성가대를 권유했다. “성가대 한 번 해보실래요? 어렵진 않아요.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신앙적 열정보다는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도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교제하고 싶었고, 일요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성가대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연습이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멜로디와 각자에게 주어진 화음을 익혀야 했다. 실수할까 긴장됐고, 혹시라도 연습을 빠지면 죄책감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위축되었다. 예배가 은혜로운 시간이기보다는 긴장되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고민 끝에 목자님께 의사를 전했다. “성가대 활동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목자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하고 싶으면 말해요.”. 부담 가지지 말라는 어조로 답변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예배 시간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목자님 부부를 볼 때 이상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들은 무대 위에 서 있고, 나는 관객석 구석에 늘 앉아만 있는 느낌이었다.


첫 직장, 내가 홍보대행사에 다닐 때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선배가 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회의 시간에도 나서지 않았고,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 이상은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항상 먼저 출근했다. 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그를 찾았다. 어느 날 복사기가 고장이 났다. 몇 동료들이 복사기의 버튼들을 누르며 당황해하던 그때, 그는 묵묵히 무릎을 꿇고 복사기 안에 손을 넣었다. 누구의 부탁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그렇게 막힌 종이를 꺼내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내게도 조력자였던 적이 많았다. 신입이었던 내가 마땅히 헤맬만한 상황에서 갑자기 참고할만한 파일을 보내준다거나, 옆으로 와 문서 정리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하면 오히려 민망해하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그는 늘 그런 모습으로 회사 곳곳에 있어온 것이다.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있어주는 존재였다.


그런 사람은 내가 몰랐을 뿐 교회에도 있던 것이다. 예배 후 예배당 구석구석을 늘 정리하는 분, 비 오는 날에도 주차 안내를 서는 분, 예배 시작 전 냉난방기를 미리 켜놓는 분.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자꾸 내 안의 질문에 부딪혔다. 왜 나는 그 자리에 들어서지 못할까? 왜 나는 보는 사람으로만 머무를까? 왜 감탄만 하면서 움직이지는 못할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보다 하다가 멈춘 사례가 더 아프게 남는다. 다시 하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확실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중도 하차했다는 부끄러움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내게, 나는 '못하는 사람'으로, '힘들어서 포기했던 사람'으로, 혹은 '결국 그런 사람이 아닌 것'으로 자꾸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이상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니까. 하지만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사람은 멈추게 된다. 나는 그렇게 반쯤 멈춘 채 관찰자가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교회 안에서의 여러 활동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절묘한 때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희망사항만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는 참 편리한 방패 같은 표현이다. 책임을 미룰 수 있다. 지금의 무력함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언젠가'를 너무 자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다시, 부활절 칸타타 연습 현장. 매년 합창에 참여하는 한 장로님은 늘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또 우리 아이를 기억하고는 “어유! 이렇게 많이 컸어?”라며 반가움을 표현하신다. 휴식 시간, 우연히 근처 자리에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말했다. “장로님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노래하시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분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뭐,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하는 것이지요. 내가 안 하면 누가 할까? 하는 마음으로요.”.


‘해야 할 일’, ‘내가 안 하면 누가’. 거창함이 없었다.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를 채우고자 하는 담백한 의지가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안 하면 안 되니까 움직이는 태도. 그것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사명을 가지는 것에 앞서, 먼저 움직이는 이들로 하여금 예배가, 교회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직은 낯설고도 먼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과의 거리감을 인정하고 싶다. 나는 아직 그곳에 닿지 못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을 때, 우리는 다양한 이유를 만든다. 지금은 바쁘니까, 혹은 내가 해봤자 티도 안 날 테니까, 아니면 괜히 했다가 더 일을 그르칠까 하는 마음 등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 설득에 가깝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마음을 품고 교회를 다녔다. 누가 역할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주일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한 스스로의 질책이 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위장하곤 한다. 분위기를 잘 맞춰주는데 탁월한 사람으로,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사람으로.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런 역할도 실제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위장이 나를 그 자리에 오래 붙잡아두었다는 것. 움직이려 할 때마다 동일한 명분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 명분이 손에 쥐어진 방패가 되어 나는 계속 가만히 있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감정 소진이 빠른 사람이다. 익숙한 환경, 예측 가능한 대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을 선호한다. 새로운 역할이나 처음 하는 일을 앞두면 주저함이 앞선다. 실수나 충돌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까. 교회라는 공간에서 봉사든, 성가대든, 어떤 역할이든 내 성향을 핑계로 피해왔다. 상대에게 민폐가 될 것을 걱정하는 표정을 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나를 보호하려는 변명, 이 둘의 거리는 종이 한 장 수준이다. 나는 그 좁은 틈에서 계속 헤맸다.


그러다 어느 날, 교회 전체 목자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예정되었고, 그날 식당 운영을 위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나는 무엇에라도 이끌린 듯 내 이름을 적었다. 아내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본 것도 아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봉사 당일, 나는 역할에 따라 설거지용 수세미를 집어 들었다. 그게 나에게는 오랜 방황을 깨는 첫 움직임이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변명의 벽을 수세미 하나 들었다고 무너뜨릴 순 없을 테지만.


우리는 사명감을 논할 때 너무 큰 역할만을 떠올린다. 찬양대 리더가 되거나, 주일학교 교사가 되거나, 감동적인 간증을 하거나. 눈에 띄는 스테이지에 서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은 작은 행동을 반복하는 데 있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이롭고 낯선 당신들’이라 부른다. 내가 익숙한 세계는 방어적이고, 명분이 앞서고, 인과가 분명한 드라마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그저 움직이고, 당연하다는 듯 감내하며, 끝없이 반복을 반복한다.


유치부 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해 오신 A 집사님. 무려 십 년 넘게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맞이해 오셨다. 우리 아이가 적응을 힘들어하던 시절, 매주 울며 거부하던 아이를 환한 표정으로 반겨주셨다. 예배 시간에도 아이 곁을 지켰고, 끝나면 다음 주에 꼭 보자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셨다. 결국 우리 아이는 교회를 좋아하게 됐고, 평일에도 A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A 집사님은 자신의 노력을 드러낸 적이 없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A 집사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아이가 교회를 계속 다닐 수 있었을까?


내게 칸타타 내레이션 역할은 여전히 매해 부담이 크다. 발음이 새거나 억양이 조금만 어색해도 예배당 전체가 침묵에 휩싸일 것만 같다. 최근 어느 날 교회 로비에서 마주친 한 성도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이번에도 내레이션 하시죠?”. 문득, 나도 이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저기 있으면 익숙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은근히 기뻤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의 요소가 된다. 자리를 오래 지켜온 사람이든, 어쩌다 한 번 참여한 사람이든. 그 모습은 곧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는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봤던 교회 사람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은 즉, 있어야 했을 자리에 있어온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야 그 자리를 향해 한두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또 여전히 소극적이고, 미리 불안해하고, 자주 멈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가지고도 이제껏 피해온 움직임을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 누군가를 위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움직임 하나가 사회를 기초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나는 지금 이 교회라는 공간 속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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