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 외곽 주거지로만 알고 지나칠 법한 동네이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우연히 매우 비현실적인 장면을 보았다. 그날도 익숙하게 자유로를 빠져나와 권율대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창 밖 하늘은 시간에 걸맞은 회색빛이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빈 땅들, 시멘트 색 가림막, 멀찍이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들. 그러다 우연히 그 장면과 마주쳤다.
'은못이 사거리', 그 근처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다. 잎 하나 없이 벌거벗은 채였다. 나는 차 속도를 늦췄다. 그 나무들은 특이했다. 가지는 반듯하지 못했다. 마치 오랜 하중을 받아온 듯 제멋대로 뻗었으며, 껍질이 벗겨져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하얀 백로들이 앉아 있었다. 많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천 조각을 걸쳐 놓은 듯, 혹은 깃털 장식을 단 조형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 안 되게 많은 수의 새들이 그 나무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물가도 아닌 곳에, 차들이 오가는 도로 바로 옆에 놓인 나무인데도 말이다.
잠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장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위의 백로들은 소란스러운 세상의 분위기와 달리 그저 차분했다. 그들은 가만히 나무 위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소나무 중 이 나무들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그보다 운전을 하며 지나가는 찰나의 신비로운 장면을 눈에 꾹꾹 담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은못이 사거리 소나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살다 보면 한 번 보고도 쉽게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은못이 소나무와 백로는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도내동 근방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매번 백로들이 자리를 지키는 건 아니었다. 추운 계절엔 가지가 텅 비어 있었고, 따듯한 계절이 오면 먼발치에서라도 새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땐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어깨 위 앉은 손님의 체온과 흔적으로 붉어진 소나무. 나는 그것을 상처라고 느끼지 않았다.(그런 생각조차 인간 중심적인 시선일까 싶기도 했지만.) 오히려 어떠한 유대감을 나눈 뒤의 진한 흔적 같았다. 잠깐 머물렀던 존재가 각인된 자리. 사람 사이에도 그런 흔적이 있지 않던가. 스쳐간 사람이 남긴 항기의 기억, 오래 함께해 닮아진 말투, 함께 걷다 보니 비슷해진 걸음걸이. 만약 내게 누가 가장 많은 흔적을 남겼는지 묻는다면 단연 아내라 답할 것이다.
아내는 유아특수교사이다. 특수학급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행정도 돌본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매우 섬세하게 아이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역할이 시작된다. 아이를 위한 저녁 준비, 짧은 놀이, '공부 놀이'(엄마와 아이가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등. 그녀는 학교와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꾸준히 노력한다. 퇴근이 늦은 나를 대신해 매일 집과 아이를 챙긴다. 아이의 젖은 머리를 말리며 아이의 수다를 미소로 받아준다. 아이가 잠들기 전 내일을 위한 대화와 기도를 함께 나눈다. 아이가 잠든 후에도 내일의 수업을 위해 노트북을 펼친다. 그녀는 쉬지 않는다. 그런 하루의 끝에서, 나는 문득, 아내로 비롯해 아이의 불안이 정리된 것을 보며 매일같이 고마움을 느낀다. 부디 아내도 하루를 마치고 내게 돌아왔을 때 같은 마음이기를.
책장 한쪽에 세워둔 그림책이 있다. 책 표지에 마치 어린아이가 손글씨로 쓴 것 같이 적혀있는 제목,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나』. 우리는 이 책을 아이가 글자를 모르던 시절부터 읽어줬다. 그럴 땐 늘 내가 먼저 울었고, 끝까지 읽어주는 건 거의 아내의 몫이었다. 만약에라도 내가 그 책을 읽어줄 땐 아이는 내 눈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혹여라도 눈시울이 빨개지는 경우 "엄마! 아빠 또 이 책 보고 울어요!" 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 책 속에는 ‘엄마’가 있다. 세상 어디든 아이가 가는 길을 응원하며 기다리는 존재. 바다 너머에서도, 우주 밖에서도, 기다림 끝에 결국 서로 다시 만나는 존재.
“사랑하는 아이야.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렴. 날다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오렴.”
내가 가장 좋아하지만, 절대 소리 내어 읽지 못하는 구절이다. 과장하자면 나는 이 구절을 자면서도 외울 수 있다(속으로). 이 문장의 화자인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아내를 강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우리 가족 안에서 항상 가장 밝고 가장 든든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열심히 아이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적극적으로 화답한다. 기본적으로 아이와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 준다. 또 필요한 순간에는 정확한 피드백을 준다.
어느 날 밤, 나는 방에 앉아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은못이 사거리의 소나무를 모티브로 한 노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나무, 백로를 반복해서 상상하던 중 문득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
윤여림 작가님의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나』를 참고한 이 문장을 핵심적인 가사로 삼기로 했다. 떠나간 백로와 기다리는 소나무, 그리고 재회. 이 모든 과정이 담긴 문장이었다. 이 노래는 세상의 모든 기다리는 이가 떠나간 이에게 불러주는 노래이다. 책의 내용처럼 내 아내가 화자라면 청자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된다.
"언제일까 너를 처음 품에 안았고
아직 그 자리에
숨을 쉬는 것 또 꿈을 꾸는 것
시작 또 그 끝에
모든 게 사라져도 나는 그대로 남아
세상의 끝 만나고 돌아와서 내 팔 위에서 쉬어
이내 또다시
날갯짓 자유로이 내 품에게서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새기려 너는 날아가겠지
날갯짓 자유로이 떨어지고 부딪혀도
그곳이 끝이 아닐 거라 기억해
내게 돌아와 안겨 쉬어도 돼
네가 떠난 다음 난 많이 울었지
그리운 마음에
멀리 있어도 우리 약속한 대로
그렇게 살면 돼
모든 건 사라지고 너도 변하겠지만
상처 나고 앙상한 가지라도 여기 아껴둘게
눈과 비가 내린 그 사이에
별과 달이 비추는 길 위에
그저 바라다보면
내가 서 있을 테니
그곳이 끝이 아닐 거라 기억해
언젠가 여기 다시 만나 우린"
가사를 메모장에 적으면서도, 내내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노래는 내 아내가 불러야만 하는 곡이 되었다. 이내 곡의 스케치를 완성했다. 이 곡은 절대 감정을 터뜨리듯 노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도하게 슬프거나 표현이 과장되지 않아야 했다. 가사는 단순하지만 기다리는 이의 마음이 충분히 묘사되어야 했다. 중요한 건 떠난 이를 여전히 사랑하며, 재회를 기꺼이 기다린다는 핵심 주제가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족한 실력으로 노래의 가이드를 내가 직접 녹음했다. 노래를 소개하는 글귀도 적어 내려갔다.
아내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아내는 노래를 참 잘한다. 대학생 시절 학교를 대표하는 노래 동아리를 이끈 경험도 있다. 시간이 흘러 노래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더 많았던 이유인지 아내는 신중했다. 적은 글귀와 함께 가이드 곡을 들려주었다. 어렵게 수락. 몇 차례의 수정을 거듭한 다음, 안방에 임시로 장비를 두고 녹음을 시작했다. 진지한 아내의 표정과 목소리가 내심 고마웠다.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냥 내 느낌대로 편하게 불러볼게"
그리고 아내는 그 말처럼 노래했다. 나는 아내의 집중에 방해가 될까 최대한 가만히 모니터에 눈을 고정했다. 가사마다 아내의 담담하지만 풍부한 감정이 담긴 듯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피아노 박자를 적당히 밀며 더욱 듣기 좋은 형태를 갖추어갔다. 자연스러운 호흡과 공백, 또 절제된 음색. 백로들이 돌아와 소나무에 앉는 그 장면, 마치 세상을 경험하러 떠났던 아이가 다시 돌아와 엄마에게 안기는 순간을 아내는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렇게 노래가 완성되었다.
노래를 발표한 지 며칠 후, 나는 윤여림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고양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딸아이가 어릴 적부터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나』를 자주 읽어줬어요.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고, 지금도 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목이 멥니다. 그 책이 모티브가 되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은못이』입니다. 작가님께 꼭 한번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메시지를 보낸 것은 그냥 잊기로 했다. 노래를 소개했고, 감사함을 전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답장이 올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작가들은 수많은 독자의 피드백을 받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틀 후 알림이 떴다. 윤여림 작가님의 답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한국에 잠시 들어왔어요. 그 사이 SNS를 확인하기 어려워 이제야 보내신 메시지를 확인했답니다. 『은못이』부터 들었어요. 아내 분 목소리가 은빛 연못처럼 맑은데 노래 선율 또한 목소리를 닮았어요. 가사에는 두 분의 마음이 담겼고요. 제 책이 두 분께 영감을 드렸다니 기쁩니다. 출판사에 알려도 반가워할 것 같아요. 다음 주 편집자를 만나는데, 괜찮으시다면 알릴게요. 맑고 고요한 사랑이 늘 가득하리라 믿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세요"
나는 그 답장을 여러 번 읽었다. 놀라운 표정으로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도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그 이후 대단한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도 아니었고, 이 노래가 어디선가 화제가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님의 그 답장은, 이 노래가 다행히도 세상 어딘가에 도달했다는 작은 증거 같았다. 한 사람이 만든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의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다시 그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 마치 떠난 이가 기다리는 이에게 다시 돌아오는 그 순환과 같게 느껴졌다.
얼마 후, 나는 다시 은못이 사거리를 지났다. 백로들은 떠난 뒤였다. 붉은 소나무 몇 그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껍질은 여전히 벗겨져 있었다. 그 모습은 슬프다기보다는 기다림으로 가득 찬 것 같이 느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누구에게 백로일까? 혹은, 나는 또 누구에게 소나무일까? 백로는 때가 되면 날아가지만 다시 돌아올 장소를 잊지 않는다. 소나무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지만 떠난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떠나거나, 기다린다. 누구도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물 수 없고, 누구도 언제나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잠시라도 함께했던 기억은, 언젠가 다가올 그리움을 견디게 하는 단단한 온기가 된다. 그리움 아래 깔린 믿음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념, 이건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은못이』라는 노래는 그런 마음을 담은 곡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것. 그건 엄마와 아이의 관계이자, 나와 아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노래를, 세상의 모든 은못이 소나무들에게 보내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기다려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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