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다. 딸아이가 일곱 살이던 어느 해 밤, 잠자기 전 침대 옆에서 나눈 대화였다고 했다.
“엄마, 너무 할머니가 돼서 숨이 안 쉬어지면 어떡해요?”
밤잠을 준비하던 아이의 작은 손이 이불 가장자리를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아이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아이다운 엉뚱함이 아니라, 어쩐지 진짜 두려움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고. 병원에 가면 된다고 아내가 대답했지만, 아이의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근데 병원에 가다가 숨이 안 쉬어지면 그냥 죽어요?”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시 건넨 물음에, 아내는 조금 멈칫했다. 무언가를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슬픈 눈치였다고 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겠지.”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의 진지한 표정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딸아이는 이어서 물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빨리 할머니가 되니까, 나보다 엄마가 더 먼저 죽겠지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더 많지.”
그리고 마지막 질문.
“그럼 나는 어떡해요? 엄마가 죽으면 나 혼잔데.”
아내는 그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다가 와락 끌어안았다고 한다. 아내는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가다듬으며,
“그때가 되면, 아마 엄마 아빠가 죽더라도 너는 분명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딸은 아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조그만 몸이 떨리도록 진정이 되질 않아 아내 품에서 한참 안겨있었다는 그 이야기. 그저 듣고만 있던 나도 막연하게 슬퍼졌다.
아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날, 아이를 재운 우리는 식탁에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맥주잔은 이미 비어 있었고, 식탁 조명은 희미하게 노랬다. 창문 너머로는 밤하늘의 회색 구름이 느릿하게 스쳐갔다. 아내는 담담한 듯 말했지만, 숨겨진 슬픔을 나는 눈치챘다. 아내는 슬픔을 오래 유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로, 잠깐 머물렀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존재들은 너무나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다정함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심함과 무감각으로 뒤섞이곤 한다.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잠자리에 눕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상대방의 유일무이함을 가리는 안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새삼스럽게 다시금 깨달았다.
처음 아이가 걸음마를 떼던 날, 아내가 밤새 잠 못 이루며 아이의 열을 재던 날, 우리가 그렇게 진하게 걸어왔던 순간들은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일상’이라는 말로 희석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일상이 될 때 그 고마움은 점점 작아진다. 아내와 딸아이를 매일 보면서, 나는 그 익숙함에 점점 덜 감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들이 내 인생의 전부인데도. 그건 내 부주의였고, 삶이라는 물살에 무심코 휩쓸려간 결과였다.
며칠 전이었다. 4월의 오후, 봄이 제법 자리를 잡은 날 우리는 시간을 쪼개어 세 가족이 함께 산책을 나섰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햇살에는 분명 봄의 온기가 섞여 있었다. 아이는 가벼운 옷차림에 신나서인지 나와 함께 뛰었고, 아내도 그런 우리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
단지 앞 공원을 지나 창릉천을 향하는 길목. 길가의 벚꽃은 이미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얗게 피었던 꽃잎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기도 했고, 그 위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잎들이 부드럽게 일어나기도 했다. 또 연둣빛 잎사귀들은 가지마다 새롭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길 모퉁이의 조팝나무들은 작고 하얀 꽃송이들을 바닥에 소복이 뿌리고 있었고, 바람은 옷깃을 스치며 겨우내 잠들었던 계절의 촉각을 깨웠다. 마치 봄의 슈퍼스타라도 된 냥 각각의 봉오리는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 세례를 즐기는 듯했다.
나는 지나쳐 온 주변을 문득 멈춰 돌아봤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계절을 무심히 흘려보냈던가.
작년 여름, 처음 방문한 워터파크에서 신나 하던 아이의 표정.
가을, 낙엽을 밟고는 소리가 웃기다며 깔깔 웃던 아내와 아이의 모습.
겨울,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함께 와서 행복하다며 웃음 짓던 아내의 얼굴.
모든 계절을 우리는 함께 보냈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얼마나 자주 잊었는지 몰랐다.
나는 생각했다. 저 나뭇잎들 중 어떤 건 작년 여름부터 내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어쩌면 겨울까지도. 우리 옆에 그렇게 붙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왜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들을 이렇게 반가워하는 걸까? 초록은 늘 곁에 있었는데. 우리는 왜 지금에서야, 그것들을 다시 본 것처럼 감탄하는 걸까? 봄이 되면 새로 돋아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잊혔던 소중함일지도 모른다. 흐려졌던 선을 다시 진하게 따라 그리는 것처럼.
아내와 딸이 나눈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대화가 다룬 것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함께라는 놀라운 현실 그 자체였다. 우리는 서로 늘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저 흘러가는 우주의 나날 중 운 좋게 함께할 수 있는 하루일 뿐이다. 늘 곁에 있다는 건 환상이고 거짓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잠시 스쳐가는 존재들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은 언제나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냉소적으로 들렸던 그 말이, 지금은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해석된다. 죽음을 향하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선명히 살아낼 수 있다. 언젠가 끝날 걸 알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인간만이 유한한 존재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죽음에 대한 각성'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끝을 사랑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들려준 그날의 대화는, 아직 어린 딸아이가 이 진실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대화를 통해 비로소 내 삶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다시, 산책하던 날. 교차로를 건너 창릉천 산책로에 다다랐을 때, 바람은 조금 더 강해졌다. 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다가 눈을 가리기도 하고, 아내는 그럼에도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한다. 아이는 벚꽃 구경보다는 얼른 근처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만화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근처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 평범한 한 장면. 그러나 그날따라 더 눈부셨다. 잠깐 시간이 멈춘다면 그 순간이 적절했을 것이다. 나는 아내와 아이를 향해 한달음에 다가가 함께 사진으로 그 아름다웠던 찰나를 담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의 손을 더 꼭 쥐었다. 손들 안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온 감각으로 느꼈다.
봄의 슈퍼스타는 꽃도 아니고, 새싹도 아니었다. 내게는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 가끔은 짜증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무심히 대하기도 하는 그 사람들. 사랑하지만 때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러나 분명히 서로의 삶의 중심에 있는 존재들.
아내,
아이,
그리고 소중한 주변의 모든 이들.
그들과 나는 서로, 여름 내내 익숙해지고 가을에는 눈에서 점차 멀어지며 겨울에는 거의 잊히다가도 봄이 되면 다시 눈에 들어오는, 그 초록의 잎사귀 같은 존재들이었다. 봄이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늘 곁에 있었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늘 있을 것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루는 결코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깨달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했을까. 어떻게 대했을까. 어떻게 웃었을까.
내일은 다시 바쁘게 흘러갈 것이다. 아내는 수업과 행정업무로 정신이 없을 것이고, 아이는 생소한 수학 문제로 난감해할 것이고, 나는 반복되는 회의와 외근으로 지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도 오늘을 더욱 기억하고 싶다. 봄바람이 불던 오후,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아내와 아이의 걸음을 맞추던 그 시간을.
봄은 매년 오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이 순간의 따뜻함을, 나는 더 자주 바라보고, 더 자주 감탄하며 살아가야 한다.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이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늘 함께 있는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다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내가 나와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오늘도, 나는 나의 슈퍼스타들과 함께 걷는다. 익숙함이 무뎌지지 않도록 한껏 서로의 초록빛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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