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죽음 후에야 그녀를 이해했다.

# 어두운 하늘에 수많이 놓인 별들 아래 깜깜한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by 범주

막둥이가 막 일병이 된 어느 초겨울, 가족들은 동생의 첫 외출을 기념하여 동생이 있는 대전에 가기로 했다. 엄마와 언니는 새벽부터 동생을 보기 위해 안개를 뚫고 달려갔다. 아빠는 회사에 들렸다 가야 했기에 나와

오후에 천천히 대전으로 출발했다. 파킨슨병이 있는 아빠가 장거리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이었다.

아빠는 오랜만에 보는 동생에게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싫어하셨고,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동생을 보기 위해

며칠 내내 홀로 대전역 맛집을 검색하셨고, 고기 맛집에 이자카야까지 완벽한 계획을 짜 둔 아빠였다.


대전까지 가는 3시간 동안 나는 태연한 척 맹연기를 하며 혹여나 이 큰 차가 차선을 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대전에 도착한 뒤 아무렇지 않은 척 기지개를 피며 “어우 아빠 운전 실력 안 녹슬었네-리무진인줄” 라고 말하며 애써 웃었다.

장시간 운전에 지친 부모님을 위해 우리는 다 같이 호텔에 누워 낮잠을 자고 근황을 얘기했다. 부대의 분위기는 이렇고, 선임은 저렇고, 주특기는 요거라며 사진까지 보여주며 신나게 썰을 푸는 동생을 보니 안쓰러움과 동시에 일상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이거였지. 동생이 군대에 간 뒤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아빠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할머니, 수술 직전의 언니로 집안 분위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의 신난 웃음이 낮잠 자는 부모님의 미소를 짓게 했고, 언니와 나의 마음이 녹였다. 편안했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아빠가 미리 알아둔 맛집으로 가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다른 아들들은 과묵하고 무뚝뚝하다던데, 세 누나들 사이에서 자란 막둥이 남동생의 남다른 수다 본능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계속됐다. 한 손은 고기를 들고, 다른 한 손은 군대 이야기에 동원되어 여러 제스쳐를 취하느라 바빴다.

“그만 말하고 고기 좀 먹어” 걱정의 말에 동생은 아직 할 말이 산더미라며 오히려 고기를 내려놓았다. 빵 터진 우리는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2차로 향하며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때였다. 따르르- 여보세요?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전화기를 쳐다봤다.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고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곧장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호흡이 가빠졌고, 건물 밖으로 혼자 나갔다.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따르르- 여보세요?

숨이 약해진 할머니를 보고 놀란 간호사의 착각이었다.


할머니는 위독한 상태셨다. 일단 당황한 우린 호텔로 향하다 1층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다시 전화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어, 나 여기 기프티콘 있어” 우리는 철없이 기프티콘 쓸 생각에 어플을 뒤젹였고, 진정에 도움이 되는 차를 마시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어떤 전화를 기다리는지 몰랐다.

죽음의 통보를 기다리는지, 기적을 기다리는지 모를 기다림 끝에 결국 몇분 뒤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다 같이 호텔 방으로 올라가 짐을 챙겼다. 할머니는 전라도 광주에 살고 계셨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겐 검정색 옷이 없었다. 추운 날 산소에 올라갈 운동화와 패딩도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대전에서 비싼 호텔을 날리고 3시간을 걸려 집에 들린 뒤 짐을 챙기고, 5시간을 걸쳐 할머니에게 또 가야 했다. 나는 왔던 것과 같이 다시 아빠의 차에 올라탔다.


깜깜해진 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선 음악조차 함부로 틀 수 없었다. 아빠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조용한 차 안에서 하늘을 보았다. 산속 고속도로에선 별이 무수히 많이 보였다.

“아빠, 별이 엄청 많아요” 우린 함께 하늘을 힐끔 쳐다봤다. 저 어딘가 할머니도 계실까. 우릴 지켜보고 계시진 않을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공기가 히터로 인해 따뜻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아빠는 입을 열었다.

할머니 이름은 알아? 헷갈렸다. 얼른 메모를 뒤져 할머니 이름을 찾아내어 대답했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내 대답을 들은 뒤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지금껏 듣지 못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할머니의 삶. 지금 내 나이, 스물 세살에 타지에 홀로 나와 가족 곁을 떠난 아빠에게 들은 할머니의 이야기는 재밌었고, 구슬펐고, 다사다난했다. 9남매의 첫째로써 8명의 동생들에게 모든 것을 양보한 할머니, 그럼에도 많은 것을 차별당하고 포기한 할머니, 5.18 광주에서 죽을 뻔하고, 한 번의 넘어짐으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였다.


아빠는 어두운 하늘에 수많이 놓인 별들 아래 깜깜한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천천히, 깊숙이 할머니를 회고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녀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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