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유일한 친구 윤슬에게 쓰는 동화

by 범주

철썩철썩 끼룩끼룩 -

저 먼 바닷가에는 파아란 파도와 갈매기 부부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크리섬이 있었어요. 크리섬에는 아주 열정적인 빨간색 머릿결을 가진 루미라는 남자 아이가 살고 있었지요. 크리섬에는 루미와 루미의 형이 살고 있었어요. 루미의 아버지는 일을 하러 도시에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도시로 이사를 갔고, 형은 늘 공부를 하느라 바빴어요. 그래서 어린 루미는 섬에서 늘 혼자였지요. 루미는 친구가 없어 늘 외롭고 조용했어요. 그래서 언제나 바닷가에 가서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어요. 바다를 보며 루미는 혼자 늘 시끄러운 혼잣말을 하곤 했지요.

“파랗고 드넓은 저 바다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바닷속엔 누가 살고 있을까? 바다는 왜 푸른색일까?”

루미는 늘 바다가 궁금했어요. 하지만 루미의 형은 늘 경고했지요.

“루미, 바다를 구경하는 건 좋지만 들어가서는 안 돼! 바다는 깊고 어두워서 길을 잃기가 쉽단 말이야. 네가 길을 잃으면 우리는 다신 만날 수 없어.”


언제나 형의 경고를 들어온 루미는 매일 매일 바다 앞에 앉아 바다를 구경만 했답니다. 어느 날 루미는 형에게 아주아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루미! 우리도 이제 크리섬을 떠나야 해. 아빠를 만나러 도시로 가게 될거야”

루미는 아빠를 만난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도시엔 바다가 없었어요. 바다를 떠나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었지요. 끼룩끼룩 매일 만나는 갈매기 부부와 철썩철썩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푸른 바다에게 이제는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였어요. 루미는 바다를 잊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자신이 보는 바다를 아빠에게도 똑같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친구가 없던 루미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건 아름다운 크리섬의 바다였기 때문이에요. 루미는 소중하고 유일했던 친구를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얀 도화지를 가지고 와 바다 앞에 앉았답니다. 루미는 알록달록한 물감들을 모래사장 위에 던져놨어요. 그러곤 바다를 바라보고 파란색 물감을 손에 쥐었답니다. 뜨거운 태양이 하늘 위에 있을 땐 하얀 태양빛이 바다를 비추고 바다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을 내곤 했어요. 루미가 그림을 그리려고 바다를 보았을 때, 바다는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지요. 바다 위에 수많은 거울 조각들이 찰랑찰랑 소리 내며 움직이는 듯했지요. 루미는 파란 물감을 손등에 쭈욱 짰어요. 그러고선 도화지에 손가락으로 물감을 색칠하기 시작했지요. 하얀 도화지 위를 파란 물감이 쓰윽쓰윽 가득 채웠어요. 어느새 하얗던 도화지는 파랗게 변했답니다. 루미는 종이를 들고 바다와 이리저리 번갈아 보며 그림을 비교했어요. 하지만 루미의 그림은 무언가 부족했어요.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그때, 루미는 깨달았어요. 루미가 사랑하는 크리섬의 바다는 반짝이는 조각빛과 꼭 함께였어요. 루미는 하얀 태양 빛이 바다를 비출 때 보이는 바다와 조각빛들이 좋았어요. 파랗게 칠한 도화지에 하얀 조각빛을 주워 붙이고 싶었던 루미는 바다로 슬며시 다가갔어요. 루미는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따라 그리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빛이 사라지고 멀리서 보아야만 반짝반짝 빛을 내는 조각빛 바다였어요. 루미는 그저 파랗기만 한 도화지를 들고 울상을 지었어요.

“하나도 안 똑같아. 바다 위의 조각빛을 내 그림 위에 붙이고 싶어!”

루미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형을 불렀어요.

“형! 조각빛을 주워줘!”

루미의 형은 말했어요.

“루미, 바다에 들어가는 건 위험해. 책에서 봤는데 바다엔 무시무시한 상어가 살고 있댔어”

루미는 실망했어요. 하지만 루미가 바라보는 바다는 형의 말처럼 무섭지 않아 보였어요.

“형, 나는 바다를 믿어. 바다는 내 친구야. 날 데려가지 않을 거야!”

루미는 계속해서 형을 설득했어요. 결국 루미의 형은 주먹을 꽉 쥔 채 두려운 표정으로 바다에 발을 집어 넣었어요. 사실 루미의 형도 처음이 두려운 것이었답니다. 바다에 들어간 루미의 형이 바다에 들어가 조각빛을 주우려 할 때마다 손에 잡히는 건 바닷물뿐이었어요.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루미의 형이 조각빛을 가져오는 것은 실패했답니다.


“루미, 네 말이 맞아. 바다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구나. 하지만 그만 포기하고 파란 바다로 만족하자. 너의 그림은 충분히 아름다워. 저 조각빛들은 주울 수 있는 게 아니야.”

루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먼저 집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나 사실 루미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루미는 꼭 그림에 조각빛을 붙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루미도 바다로 한발짝 한발짝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루미는 크리섬의 유일한 친구였던 바다를 정말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어요.

“바다야. 나는 이제 이 섬을 떠나.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루미는 바다를 꼬옥 껴안았어요.

“너를 그리고 있어. 그러니 조각빛을 나눠주지 않을래?”


루미는 조각빛을 잡으려 손을 뻗었어요. 그렇게 루미가 조각빛을 잡으려 애를 쓰는 동안 루미의 파란 그림은 모래 위에 툭- 하고 떨어졌어요. 루미가 조각빛에 정신을 팔린 동안 그림은 모래사장 속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그림은 모래들 사이에 깊이 박히고 말았어요. 한편, 루미는 조각빛을 가지기 위해 바다 속으로 점점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루미는 사실 한편으로는 무서웠어요.

“바닷속에 괴물이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조각빛을 주울 수 있겠지?”

언제나 루미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던 바다였지만, 점점 바다는 차갑고 깊은 물로만 느껴졌어요. 루미는 무서웠지만, 꼭 반짝반짝 빛이 나는 바다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완성된 그림을 꼭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다시 한번 루미는 바다에게 말을 걸었어요.

“아름다운 바다야. 네 덕분에 많이 행복했어. 그러니 조각빛을 나눠주지 않을래? 아빠에게 꼭 보여주고 싶거든!”

루미가 말을 마치자 조각빛이 점점 루미 주변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어요. 조각빛이 루미에게 다가올 때마다 루미 마음속 무서움은 사라져갔어요. 어느새 뜨거운 태양 아래 파란 바닷속 루미는 아름다운 조각빛에 둘러쌓여 반짝 반짝 빛이 나고 있었답니다. 반짝이는 바닷속 루미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어요. 루미는 더 이상 바다가 무섭지 않았어요. 반짝이는 바닷속에서 열심히 조각빛을 주우며 행복해하던 루미는 그제야 그림이 생각났어요.


“아차! 내 그림!”

루미는 얼른 두 손을 모아 조각빛을 담은 뒤,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조심 모래사장으로 걸어갔어요. 바다로 너무 많이 들어와 버린 루미는 섬으로 돌아가는데 힘이 들기 시작했어요. 점점 파도는 거세지고 바닷물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루미는 계속해서 제자리였어요. 조각빛을 담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바닷속을 걷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거든요. 루미는 손에 든 조각빛을 포기해야만 섬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루미는 한걸음 걸을 때마다 한참 조각빛을 바라봤어요. 그러다 점점 조각빛이 흐려지기 시작했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니 쨍쨍하던 태양은 어디 가고 어두운 구름들이 생겨나고 있었지요. 조각빛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자 루미의 두 손 안에 조각빛도 시름시름 빛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바다 위 빛들이 점점 사라지고 어두워지자 루미는 다시 겁이 났어요. 결국 루미는 두손에 담긴 조각빛을 놓아주고 모래사장으로 달려나갔어요! 성큼성큼 마치 바다가 밀어주듯 쉽게 루미는 섬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루미가 섬에 가까워질수록 모래사장 속에 깊숙이 박힌 자신의 그림이 보였어요. 루미는 겨우겨우 모래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루미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뒤를 돌아 바다를 보았어요. 바다는 이미 조각빛을 잃은 지 오래고 어두운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답니다. 루미는 조각빛이 없어진 바다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어요. 어두운 바다를 보며 눈물이 나기 시작했지요. 루미는 눈물을 뚝 뚝 흘리며 터덜터덜 걸어가 모래사장 속에 박혀있는 그림을 꺼내려 했어요.

“조각빛을 가져오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 ! 루미는 루미의 그림에 수많은 조각빛이 붙어있는 걸 발견했어요! 루미는 깜짝 놀라 눈물을 닦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루미가 그림에 붙일 조각빛을 찾으러 바다로 떠난 사이, 그림은 모래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새하얀 모래들이 루미의 바다 그림에 붙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답니다. 루미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어요. 루미는 모래를 바라보고 엎드렸어요.

“모래들아 고마워!”

루미는 모래 위에 엎드린 채로 모래사장을 꼬옥 껴안았어요. 그 뒤 그림을 두 손 높이 들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형! 드디어 조각빛 바다를 완성했어!!”

루미가 힘차게 그림을 흔들며 형에게 달려가는 한 걸음걸음마다 조각빛 모래알은 하나씩 하나씩 종이에서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그림은 아직 반짝반짝 무수히 많은 빛깔의 조각들을 꼬옥 품고 있었답니다. 루미는 비록 바닷속 진짜 조각빛을 그려내진 못했지만, 하얀 모래들이 루미의 그림을 빛내주었어요. 친구가 없던 크리섬의 루미 곁에는 반짝이는 바다뿐만 아니라 따스한 모래들도 언제나 있었던 것이었어요.

루미는 형과 아빠 모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인 바다와 모래를 똑같이 보여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도시에 간 이후에도 바다와 모래,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 있기에 전혀 외롭지 않았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너무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