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지구멸망을 꿈꿨다.

by 범주

언젠가 집에서 뉴스를 보다 핵폭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여느 때와 같은 가짜 뉴스였다.

그러나 그 당시 내 감정에 나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냥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모순적이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것에 늘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늘 '착한 사람'으로 평가됐고, 남과 싸워본 경험은 가족 외에 전무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았고 늘 새로 생겨나기만 했다.


우리 가족은 6명이다. 4남매와 함께 나는 아주 왁자지껄하고 화목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가족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잃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초등학생때나 이런 생각을 하며 잠 못 이뤘다고 한다.

아직 어린 시절 사춘기를 겪는 중인건가, 무언가 환상 속에 살고 있는건가 싶다.


고민 없진 않지만 언제나 화목한 우리 가족의 뒤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매일을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살진 않는다.

그랬다면 언니와 머리채 잡고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엄마에게 소리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빠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외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주 최강 효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서 지구 멸망을 희망한다.


차라리 한날한시에 전세계인이 한번에 깔끔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괴로워할 일도, 눈물 흘릴 일도, 그리워할 일도 없지 않을까?


영화 속 악당들의 자기합리화가 떠올랐다.

영화 속 악당들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지구를 위한 일이야 음하하'라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지금 내가 영화 속 인물이라면 방구석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며 쓴 웃음만 짓는 소심한 악당 역이겠지.


악당들은 보통 하나만 알고 둘을 몰라 문제다.

나의 어리석은 마음가짐은

열정적으로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의 불꽃을 꺼트리고

치열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을 무시하며

죽음을 회피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준비가 덜 된 나는

오늘도 가슴 속 한켠 지구 멸망을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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