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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Jun 09. 2020

To.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의 지적 생명체들에게

From. 앨릭스. 잭 쳉 소설 <우주에서 만나요>를 읽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연애소설'인 줄 알았다.


'왜 우주에서 만나쟤'

'다시 못 만날 연인에게 하는 말일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책을 펼쳤는데...


표지 앞 날개에 작가 소개와 작품 소개 글을 읽으며 흔한 러브스토리를 상상했던 내가 망치를 맞은 듯했다.


다 읽고 나면 누구나 반하게 되는 사랑스러운 열한 살 소년, 앨릭스...

연애소설의 멋진 남자 주인공보다 더 나를 설레게 한 소년을 떠올리며 책 속 문장에 내 생각을 포갠다.



이 작품은 우주의 다른 생명체들과 조우하길 꿈꾸는 열한 살 소년 앨릭스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앨릭스가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 녹음한 내용을 기록한 형식으로 쓰였다.
독특한 형식과 따뜻한 이야기를 결합해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목소리로 들려준 이 소설은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주는 소설"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 표지 앞 날개 <작품 소개 글>에서 갈무리 -




나는 녹음을 하고 있어.
수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지적 생명체들이 나중에 이걸 발견하고
지구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게 도우려는 거야, 이해돼?


어린 시절 앞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게로 점점 쏟아지듯 내려오는 무수한 별들 중에는

또 다른 생명체가 나처럼 지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열한 살 소년의 진지하고 순수한 학구적인 발상이 잠들었던 동심의 미소를 깨운다.



전갈은 쌍으로 나타나니 한 마리를 봤다면 다른 한 마리도 보게 될 거라고도 했어.
아주 낭만적인 생명체인 것 같아.


살아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쌍으로 다니는 벌레 한 마리를 보게 된다면,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날까 봐 두려울 것 같은데

'낭만적인 생명체'라는 소년의 발상에 또 한 번 '풉~' 하고 웃어버린다.

읽는 동안 아이 같은 미소와 순도 높은 촉촉함을 되찾게 되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아빠는 조각 퍼즐 같아.
엄마가 갖고 있는 조각도 있고 로니 형이 갖고 있는 조각도 있지만,
아예 사라진 조각도 많아서 퍼즐을 완성할 수 없는 거야.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앨릭스...

책임감 크고 어른스럽기는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사내아이들처럼

아빠와 함께 로켓을 만들고 발사 실험도 하고 싶은 열한 살 아이일 뿐이다.

비록 완성할 수는 없을지라도 완성에 가깝도록 퍼즐을 맞춰가길 응원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울지 않으려고 해 봐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어,
마음속 구름들이 뭉게뭉게 짙어지고 험해지면서 눈에 폭풍이 몰아닥치는 때가.


마음속에 뭉게구름이 커져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걸까.

작은 우산 하나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폭풍우 같은 눈물...


누구나 가끔은 그런 폭풍우 같은 눈물을 쏟는다.

눈 앞에 울지 않으려 애쓰는 꼬마 아이가 떠올라 내 눈도 촉촉해진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순간인데, 바로 실패에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어.
혹시 또 실패하면 그 실패에서 또 배우고 다시 두 배로 노력해야지.


정성껏 만든 로켓 <보이저 3호> 발사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펑펑 우는 앨릭스에게

스스로 중요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정하게 멘토가 되어 준 어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누구에게나 어쩌면 실패의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

어떤 대처,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에 펼쳐질 무대가 달라진다.


'그럴 수도 있지'


소중한 누군가의 실패와 낙담에 쉽게 내뱉는 위로의 말.

그 말은 실패의 순간에 놓인 나에게도 똑같이, 오히려 더 다정히 들려주어야 한다.




난 아홉 살이 아니고 열한 살인데.
책임감 나이로 치면 최소한 열세 살은 됐을걸!


왠지 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기대고 싶은 열한 살 소년, 앨릭스.

책임감 나이로 치면 나는 지금 몇 살일까?!



진실이란 불편한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늘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건 용감한 삶이 아니잖아!


가끔은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 진실 때문에 어깨가 눌리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아빠가 언제까지나 아니 단 한 번도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

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였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세상은 그다지 공평하지 않다는 진실,

결코 권선징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진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감당해야 할 진실의 무게 추가 하나씩 더 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왜 아빠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더 모르겠는 걸까?
사랑, 진실, 용기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야.
더 생각하고 말해볼수록 더 아득해지거든.


고독이 앨릭스를 키웠을까.

심오한 철학자 같은 열한 살 소년의 말로 전해지는 묵직한 사유로 한참을 머물렀다.


사랑, 진실, 용기 같은 단어는 여전히 텍스트 안에 가둬지지 않는 생각들이다.

어릴 때부터 부재했던 '아빠'라는 단어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부류에 넣을 수밖에 없었을 앨릭스지만,

사랑, 진실, 용기 같은 '희망'의 빛깔을 띄는 단어들과 함께 묶어둔 마음이 조금은 헤아려진다.



너희가 그걸 발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이 녹음들을 듣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용감해지고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자기 영웅의 이름을 붙인 개를 사랑하는
어느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너희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



언젠가는 꼭 앨릭스의 녹음파일을 탑재한 <보이저 4호>가 완벽하게 발사되어 우주의 정상궤도에 진입해

외계에 사는 지적 생명체들에게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설령 그러지 못한다 해도,

지구 반 바퀴쯤 떨어진 이곳에서 텍스트로 변환된 앨릭스의 녹음 파일을 듣고

용감해지고,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자기 영웅의 이름을 붙인 개를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소년으로 인해 많이 웃고, 감동하고, 성숙하고 있는 어느 미숙한 어른이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다 읽고 나서도 몇 주간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닐 만큼 사랑스러운 책이다.

책임감 나이로는 친구 같은 열한 살 소년의 이야기,

현실에 찌든 무표정한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처럼 웃고, 아이처럼 훌쩍거릴 텐데...

당신도 나처럼.


베레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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