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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Aug 04. 2020

제주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

전시 <빛의 벙커;반 고흐> 그리고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온 세상이 비에 젖어 있는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가 오기 전에도, 비가 올 때도,
그리고 비가 온 후에도.
비 내리는 날에는 꼭 그림을 그려야겠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회색 구름이 태양의 금빛을 가려버린 휴가 마지막 날의 아침.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심장까지 데워줄 황금빛을 찾아 2시간가량을 달렸다.

 
차 유리에 흘러내리는 빗물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을 유화같이 만들고, 비에 젖은 온 세상을 아름답다고 했던 고흐의 말을 실감하게 한다.

이내 그리워질 촉촉한 제주 공기를 들이키며 고흐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으로 부풀어 올랐다.



빛의 벙커; 반 고흐 전


불빛마저 곱게 번지는 아침, <빛의 벙커>에 들어선다.
고흐가 그린 고흐를 보며 내 마음속 고흐를 떠올린다.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을 쏟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고흐가 제주의 숲과 바다를 보았다면 화폭에 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제주에서 고흐를 만나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수시로 내 영혼을 울리는 이름, 빈센트 반 고흐...



사랑하는 동생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쩌면 우리의 자잘한 슬픔들을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다정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고흐의 이 말이 내 머릿속에 한참 머문다.

자잘한 슬픔들을 농담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버텨낼 수 있겠지.



<감자 먹는 사람들>: 테오 생일에 맞춰 보내려 했던 그림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신학자가 되는 대신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했던 고흐는 사람과 인생을 향한 그의 관심과 애정을 그림에 담아내려 깊이 고뇌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이토록 별을 사랑하는 고흐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이 별이 빛나는 론강으로 바뀔 때,
내 입에서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고흐를 꿈꾸게 했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한다.


 

<씨 뿌리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반짝이는 별이 우리 몸에 있다면 그것은 아마 '두 눈' 일 것이다.
눈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은 우주만큼 크고 넓다.

별을 사랑하는 맑은 영혼의 고흐라서
눈을 통해 우주 같은 사람의 영혼을 그리려 했겠지.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테오의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테오 to 여동생 윌


테오의 말처럼 고흐는 낡은-평범함 때문에 가치를 잃은-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이 존중받는 새 시대가 열린 후 그의 작품은 재평가받고,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분명 형은 살아 있을 때 성공을 거두게 될 거야.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형의 아름다운 그림들 때문에
저절로 이름이 알려지게 될 거라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테오 to 고흐


고흐의 안타까운 죽음을 되돌릴 수 없지만 테오의 안목대로, 이제 전 세계가 고흐의 아름다운 작품을 알아본다.

누구보다 형 고흐를 잘 알았던 동생 테오.
테오와 주고받은 것은 그저 '편지'가 아니라 '영혼 깊은  이해'다.

고흐의 있는 그대로를 알아봐 주고 이해하고 지지해준 테오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고흐의 놀라운 작품들을 보며 마음껏 감동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한 한 사람의 애정과 이해와 지지는 때때로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일이 된다.





빛의 벙커: 폴 고갱


그는 정말 재미있는 친구다.
고갱은 요리도 완벽하게 할 줄 안단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보색 대비만큼 강열한 끌림이 있을까.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반대 극처럼...
어쩌면 많은 부분이 달랐던 고흐와 고갱은 어쨌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고갱과 함께 아를의 작고 노란 집에서 예술가 조합을 꿈꿨던 고흐...

우정이란 둘의 '차이점'이 '닮은점'을 삼켜버리지 않는 무게중심을 꾸준히 유지하는 일일지 모른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인 고갱의 강렬한 색채...


모든 일이 늘 좋아지고 있는 이 멋진 세상에서
결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점을
자네도 분명히 알아주기 바라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고갱


고갱과의 갈등이 점점 깊어져 라마르틴 광장의 정원에서 고흐가 귓불을 잘라내는 사건이 일어나고
고갱이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상황을 알려 걱정하게 했다는 생각에 고흐가 고갱에게 쓴 편지다.

고갱과의 갈등으로 헤어졌지만 마음으로는 고갱과 함께하고 싶었을 고흐의 마음을 읽는다.
한걸음에 달려온 테오가 얼마나 걱정했을지 생각하는 고흐의 미안함과 안타까움도 읽는다.



고갱이 남기는 인생의 질문....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테오


원시 자연에서 이상향을 추구한 고갱은 결국 고흐를 떠나 본인만의 그림을 찾는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듯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눈 덮인 브르타뉴 마을..


이른 시일에 자네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네.
우리는 늘 친구라는 사실 잊지 말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 to 고갱


같이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인생은 충분히 살만하다.

당신은 늘 나의 친구..♡



빛의 벙커: 반 고흐 & 폴 고갱 전



기간:  2019.12.06 (FRI) – 2020.10.25 (SUN)
개요: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위대한 걸작을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재해석
구성:
 - 반 고흐 : 800점 이상의 회화, 1000여 점의 드로잉으로 반 고흐의 강렬한 삶의 여정을 구성(상영시간 32분)
 - 폴 고갱 : 고흐와 강력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고갱의 명작을 세계 최초로 공개(상영시간 10분)

빛의 벙커(https://www.bunkerdelumieres.com)




레카's 작은 제안


1.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하고 관람하기
2. 장시간 관람 시 모두를 위해 앉아서 관람하기
3. 고흐/고갱 관련 책 먼저 읽고 관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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