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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레카 권 Jul 28. 2020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를 읽고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


소설보다 소설 같고,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
마르그리트 뒤라스...


활활 타오른 뒤 재도 남기지 않는 불꽃처럼 살았던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C'est tout. (이게 다예요)" 는
죽음이 가까워오는 가운데 써 내려간 생각의 파편들이다.


느린 숨을 내쉬듯 문장보다 여백이 더 많은 이 책은
생의 마지막 15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38세 연하의 얀 앙드레아와의 대화, 혹은 그에게 전하는 편지, 그렇지 않으면 혼자의 독백 일지 모르는 머릿속, 마음속 생각을 담고 있다.




C'est tout 이게 다예요



예전에도 지금도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건 사랑이지.
죽음 la mort과 사랑 l'amour.
그게 네가, 바로 네가 , 되고 싶어 하는 걸 거야.  

9페이지 Y.A 그리고 M.D의 대화 형식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었던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내용과 겹쳐지는 뒤라스의 문장이다.

죽음은 사랑을 잃게 하는 걸까, 영원히 소유하게 하는 걸까.
사랑은 죽음을 이겨내게 할까, 죽음으로 끝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죽음과 사랑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



그건 침묵인 동시에 말하는 것이지. 쓴다는 건.

16페이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 "글쓰기"는 살아가기 위한 호흡이었을지 모른다.


낯선 식민지 땅에서 가난한 백인으로 살아야 했던 유년기를 보내고, 전쟁과 질병으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며 살아온 그녀가 침묵하면서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호흡은 글쓰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원한 건...햇살아래 독서...이게 다예요




죽을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볼게요.
내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에요.

42페이지


몇 번을 되뇌며 입안에, 심장 안에 스미게 했던 뒤라스의 문장이다.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심장을 새롭게 하고 영혼의 순도를 높인다.



난,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어.
내일부터.
언제라도.

51페이지


거침없이 정열적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글쓰기도, 사랑도...
그녀만큼 거침없고 정열적일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

57페이지


한 페이지에 적힌 단 한 문장...

당장 증명해 보여줄 것처럼 신뢰를 주는 뒤라스의 말을
나는 전적으로 믿기로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해


오렴.
우리 사랑에 대해 얘기해야 해.
그걸 위한 말들을 찾아낼 거야.
어쩌면 말들이 없을지도 모르지.

62페이지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하는데
사랑을 위한 말들은 없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온전한 문장이기에
더 이상의 부사도, 형용사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오렴. 햇빛 속으로 오렴. 어떻든지 간에.




사랑,
불꽃같이 아름답고, 아스라한 것.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죽음에 가까이 서서도
뜨겁게 써 내려간 '사랑'을 읽으며
뭉클해지는 건 당연할지 모르겠다.




뒤라스의 짧은 문장과 긴 여백 사이를 느린 숨으로 읽는다



뒤라스의 많은 작품들에 자전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장르를 확정 짓기 곤란한 <이게 다예요>야말로
작가를 알몸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게 다예요>는 뒤라스의 문학적 유서다.

85페이지 <옮긴이(고종석)의 말>에서 갈무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리고 38살 연하의 벗 얀 앙드레아. 그녀의 무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얀 앙드레아  이미지 출처


1.  http://www.vlinder-01.dds.nl/cdr/other%20art/marguerite_duras.htm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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