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여름의 빌라> 책 리뷰
그러니까,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12p. <시간의 궤적>에서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56p. <여름의 빌라>에서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68p. <여름의 빌라>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71p. <여름의 빌라>에서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198p. <흑설탕 캔디>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201p. <흑설탕 캔디>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한 존재의 마음이 이토록 환하고 충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행복해졌다.
210p. <아주 잠깐 동안에>에서
창가의 커튼이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다줄 수 있는 범선의 돛처럼 부풀던 교실.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265p.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에서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온기를 얻고 사랑을 받는 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 해설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에서 황예인(문학평론가)-
때로는 함께한 시간의 밀도가 아니라
지속되어온 시간의 길이가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 해설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에서 황예인(문학평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을 것이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므로.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