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하며 생각한 것들 - 본질에 관하여
오늘도 선생님은 위기의 순간에 질문을 했다.
나는 버티는 중이다. 기다란 고무줄 끝에 달린 밴드에 양 손을 끼운 채 팔을 90도 각도로 굽혀 나란히 하고, 어깨는 형님께 인사를 올리듯 한껏 치켜올려 그대로 둥글게 말아내고. 그러면서 귀와 어깨는 멀어지고 목은 길게 뽑아내며 턱은 적당히 치켜들어야 한다. 시선은 언제나 정면이다.
"필라테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죠?"
애초에 대답하라고 하는 질문이 아닐 뿐더러 대답을 할 수도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사용한 난공불락의 암호기 애니그마의 규칙처럼 매일 바뀌기 때문이다.
"척추예요."
오늘은 척추구나. 척추를 강인하면서도 유연하게 하는 것. 그것이 필라테스의 목적이라고 한다. 공감왕으로서 맞장구를 못 치면 고개라도 힘차게 끄덕이고 싶지만, 그러면 척추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나는 죽지도 않고 늦은 저녁 또 다시 운동을 하고 있다. 내가 시계를 흘끗거리며 요령을 피우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선생님의 질문이 날아든다. 매번 바뀌는 대답. 이제는 조금씩 기대가 된다. 기대하는 것은 좋다. 정신이 팔리면 잠시라도 육체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바로 브이 자세예요."
그러면서 현재 상태에서 무릎을 펴고 상체를 끌어올려 대문자 브이가 되라고 한다. 이 자세는 평소 구부리지 않던 것을 구부리고 구부러져 있던 것을 펴게 한다. 그리하여 필라테스가 지향하는 모든 것을 완성하는 동작이다. 말하자면 내가 가야할 곳인 셈이다. 비록 지금 내 자세는 찌그러진 U에 가깝지만 이건 마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정말 가기 싫었다. 준비 운동과 마무리 운동이 부실한 채로 내 능력 밖 강도의 운동을 연달아 하느라 온 몸의 근육이 잔뜩 성이 났다. 하지만 이대로 운동을 안 가면 몸도 마음도 불편한 채로 저녁을 보내게 된다. 나는 어느새 전신을 쫄쫄이로 감싸고 허리를 반으로 접기 위해 얼굴이 터지도록 분투하고 있다.
"컨트롤이에요."
지난 수업 정답과 조합하면 ctrl+v다. 복사네 복사. 나는 마스크 뒤로 히죽히죽 웃는다. 자신의 몸을 온전히 인지하고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그것이 근력과 유연함의 진정한 의미라고 한다. 나는 그 명징한 정의에 탄복한다. 나는 멋있는 말을 들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손을 대신해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나는 질문 선생님이 필라테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궁극의 답을 갖고 있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걸 리스트로 뽑아 들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매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존재 자체로 결코 까먹을 수 없는 대답이 된다.
나는 외우지 않은 대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