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를 받으며 생각한 것들 - 진화와 퇴화에 관하여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불과 보름 전까지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던 사람에서 잠시 잠깐 헬스장을 다니는 사람을 거쳐 지금은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맡은 선생님은 다소 낯뜨거운 닉네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태도는 담백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은 내게 운동의 목적과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예전 같으면 천치같이 줄줄이 여러말을 했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노련함을 발휘해 말을 아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선생님의 질문은 꽤 집요했다. 나는 닳고 닳았는데 선생님이 순수했다.
목적: 체력 증진
배우고 싶은 것: 올바른 허리 운동
나는 더 튕기지 않고 얼른 짧게 답했다. 이를 성실하게 받아 적은 후 선생님은 나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인바디 측정 자세로 서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디디고 섰는데도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 몸을 타고 전류가 흐르는 상상을 한다. 내 몸이 3D로 스캔되어 허공에 빙빙 도는 상상으로 딴생각이 급물살을 타려는 순간 선생님이 내게 왼손잡이냐고 묻는다.
아니오.
그를 실망시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고질병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이 관계에 솔직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다행히 선생님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무당도 아닌데 자꾸만 뭘 맞춰서 과시하고 증명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부류와는 거리가 었다.
비록 가정은 틀렸으나 이어지는 그 가정을 도출한 근거는 매우 타당하고 신뢰도가 높았다.
그가 내가 왼손잡이가 아닐까 생각한 이유는 내 왼쪽 어깨부터 등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잔뜩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가설을 검증하듯 선생님이 나의 어깨를 잡고 좌우로 허리를 휘휘 돌리니 왼쪽이 훨씬 많이 돌아갔다. 이어 시키는대로 정자세로 스쿼트를 하니 아무리 애를 써도 무게가 온통 왼다리에 쏠렸다.
왼쪽 허리가 힘이 없어 왼 다리가 대신 힘을 쓰도록 굳어졌다고 했다. 오른쪽 다리의 약화는 덤이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 사실을 어렴풋히 느끼고 있었다. 왼쪽이 더 강하다고 느끼면서 한편으로 왼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몸을 쓸 때 자주 느꼈는데 상하체를 나눠서 따져보니 그 정체가 선명해졌다.
내 왼쪽 하체의 발달은 왼쪽 상체의 퇴화로 인한 변이였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계단은 왼다리로 오르고 잠은 오른쪽으로 누워서 자는 사람으로 진화해 있었다.
문득 이런 식의 파국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나마 있는 장점이라는 건 위험하다. 불행 중 다행, 개중 쓸만한 것도 모두 유사 위험이다.
열심히 일하고도 떳떳한 기분이 들지 않을 떄, 칭찬을 받고 기분이 더러울 때, 일을 해결하고도 찝찝할 때. 내가 열심히 굴리고 것이 이미 혹사당하고 있는 내 왼다리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