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프로젝트#3 수상 감사 인사
무엇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은 아직 어렵습니다. 사실 정해진 답은 있지만, 그 답은 구심점 없이 제 안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이제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 꿈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건 제 경우엔 조금 남세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이지 않고 방관하는 기분이기까지 합니다. 써야 하는 것, 쓰고 싶은 것, 절로 쓰이는 것이 있고 그걸 쓰는 게 제 일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직무유기 비슷한 걸 저지르고 있기에 한숨은 한밤중에도 저와 동행합니다. 그 한숨이 같은 지붕 아래 있는 사람들의 귀에 스며든다는 걸 알기에 다시 한 번 괴로워집니다. 이제 네 달 된 제 아들은 제 숨의 의미를 아주 잘 간파해서 그럴 때마다 저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곤 합니다.
며칠 전, 출장지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남이 붙이는지 본인이 붙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알 것 같습니다. 그건 작품이 붙이는 호칭입니다. 저는 한동안, 이대로라면 거의 앞으로도 쭉, 부끄럽기만 할 예정입니다. 아직 작품이라 부를 것조차 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괜찮습니다, 무모함과 상관없이 글쓰기는 그 자체로 즐거우니까요. 이 재미가 떨어질 일은 없을 게 분명하니까요. 작가는 아니더라도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건 결과가 아니라 행위이니까.
한 사람과 한 도시에 관한 글에 감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브런치북 세 번째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주셨습니다. 사적으로 한 사람과 한 도시에 바치는 글이었기에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마이너하다’고 하면 주류의 반대편에 당당히 서시는 분들께 죄송하니까 ‘별로 공감할 거리도 없는 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재차 부끄럽다고 쓰려 합니다. 솔직히 기한 내에 매거진에 열 개 이상의 글을 채워야 한다는 마감 그 자체가 좀 열심히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분량까지는 이미 써둔 게 있었고, 그걸 더 근사하고 솔직하고 자세하게(?) 수정하자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새로 써야 할 부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감이 잡힌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게 저만이 쓸 수 있는 어떤 작품이 되진 못하겠지만 그걸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믿음은 저버리지 않기로 했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본의 아니게 제 마음대로 해석되고 있는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의 주인공 M이 제게도 시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줬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사랑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넘어서고자 합니다.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잡지의 편집장님…이 한 말은 아니고 부인되시는 분이 SNS에 그런 표현을 쓰셨더랍니다. (이분은 음악을 하시는 분입니다.) 시키지도 않은 걸 스스로 만들어 내놓고 파는 사람들, 이라고. 전 아직 뭘 팔진 않았지만 참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