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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Oct 08. 2016

팔 할이 잊힌다

나는 자주 남의 것을 내 것이라고 혼동한다

 팔 할이 잊힌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떠오른 생각, 글감, 어떤 문장들이 그렇게 존재하지조차 않았다는 듯이 사라진다. 종종 운이 좋은 어떤 것들은 메모장에 입력되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직관이 그걸 써야만 하는 이유를 확신하던 순간은 절대 돌아서는 법이 없다. 남은 것은 단어들,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문장들, 또는 영감이 떠올랐던 장소나 시간이나 상황에 관한 불분명한 단서들뿐이다. 복원사가 훼손된 예술품에 본래의 모습을 되돌려주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팔 할을 글로 되살아나게 하려고 애쓴다. 그걸 써야만 하는 이유를 알던 유일한 목격자인 직관은 침묵하고, 뭉툭한 이성과 딱딱한 감정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괜히 바빠진다. 더욱이 그렇게 쓰인 글은 어딘가 최초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모든 일의 원흉인 직관이 넌 그때 이 글을 전부 써 내려 갔어야 했어, 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되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내 손에 들린 이 책의 여백에 썼어야 했나? 주머니에 거꾸로 꽂혀있던 스마트폰 메모장에 빛의 속도로 입력해야 했나? 아니면 내 옆에 서 있던 양복 차림의 아저씨나 염색한 지 너무 오래돼서 머리가 두 가지 색깔이 된 학생에게 지금부터 서기가 되라며 문장을 읊었어야 했나?


 원래 쓰려던 건 이게 아니었다, 라는 걸 깨닫자마자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몇 가지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술을 마시거나 내게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그냥 잠들어 버리는 일. 나는 때와 기분에 따라 이런 반응들을 돌아가면서 선택한다. 아니다, 한 가지 더 있다. 최초의 지시와 다르게 쓰인 글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서 그것의 기원에 가까워지게 기도企圖하는 일.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쓰고, 반 정도 체념을 섞어서 타협하고 나면 어쨌든 뭔가를 써냈다고 자위하는 일. 잡문이라도 완성하고 나면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어딘가 허전해지는 그런 일.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일상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에서 갑자기 떠오른 것들이 그냥 죽어버리는 덴 복잡한 과정이나 커다란 사건이 필요하지도 않다. 환승을 하려고 계단을 오르면서, 개찰구 앞 빵집에서 빵을 사면서, 사람들한테서 멀찍이 떨어져 담배 같지도 않은 전자담배의 스위치를 누르면서, 버스 단말기의 감사 인사를 들으면서, 걸으면서, 언덕을 오르면서, 갑자기 회사 일이 떠오르면서, 이제 막 백 일에 접어든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내의 멋진 요리를 맛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샤워를 하면서, 숨 쉬면서, 숨을 쉬며 일 초 더 내 삶을 연장하면서, 언제든지, 어느 조건에서든지 나는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애초에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고, 내게 떠오른 생각, 글감, 문장들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오늘 밤도 책상 앞에 앉게 하기 위해 삶, 아니 그건 너무 거창하니까, 내 허영심이 만들어낸 환영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납득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쉽게 잊힐 수가 없다고, 그 순간이 기약도 없이 그렇게 사그라지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뭔가 다른 걸 써내긴 하니까 이 모든 건 그 다른 무언가의 음모이자 계략이라고 상상한다.


 오늘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단어와 문학은 개미나 물과 같기 때문이다. 틈새, 구멍, 보이지 않는 사이로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멋진 형태로 들어가는 것이 단어이기 때문이다. 삶에 관하여, 세상에 관하여 진정 궁금했던 것들도, 먼저 이 보이지 않는 틈새에서 나타나고, 무엇보다도 문학이 가장 먼저 발견한다.” 나는 문학을 잘 모른다. 그것에 관하여 깊게 (또는 만족스럽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어떤 부분은 꽤 궁금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을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다. 발견하고는 싶은데 나한텐 그런 수원지나 유전은 없다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전달 받는다. 이거다 싶었던 생각, 글감, 문장들은 내가 들고 있는 딱딱한 양장판 책 속에 누군가 써 놓은 것, 누군가 이미 발견하고 나에게 속삭여 준 것이었을 뿐이다.


 복권을 긁었다가 천 원짜리 몇 장을 날리면 조금 실망을 한다. 오늘과 같은 날의 실망은 거의 복권에 커피 한 잔 값을 날리는 실망과 비슷한 무게, 비슷한 양이지만, 복권과 달리 매번 누적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누적분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냥 모든 게 다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런 기분을 잊으려고 이 글을 썼다. 그럼 좀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야 잠도 더 잘 온다. 물론 최초에 떠올랐던 글과 이 글은 다르다. 앞으로도 그 둘은 닮을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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