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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Feb 10. 2017

장강명의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느끼는 어떤 현실감과 허무함까지

 3박 5일간의 보라카이 여행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M의 말에 놀라우면서도 샘이 났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육아에 관한 좋은 내용이 담겨 있다며 보내준 - 그러고 보니 잘 받았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 책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건 나지만, 나보다 훨씬 더 깊은 층위에서 여행을 갈망하는 M은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밀린 책이 많다는 이유로, 은근히 샘이 난다는 말하지 않은 이유로 한참을 책상 위에 그냥 놓아두다가 마침내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신혼여행을 4박 5일 오키나와로 다녀왔잖아. 오빠라고 책 한 권을 못 쓸 이유는 없어.” M이 그렇게 말했다. 짧은 여행도 유난히 길고 지루한 여행기로 쓰길 좋아하는 나로서도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내 습관처럼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못해.” 책을 다 읽고 보니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반, 어쨌든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 저자 부부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라는 점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반, 여전히 제자리였다. “오키나와로는 안 돼. 쓰고 있는 몬트리올 여행기라면 모를까. 하지만 진짜 중요한 부분은 말이야” 저자는 소설가로 등단한 상황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펴내지 못했으며 아무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도 우리의 여행에 관심을 보일 리가 없었다.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하는 과정, 여행을 다녀온 후로 나뉜다. 저자의 등단 소설인 『표백』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소설을 쓴 사람의 신혼 여행기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 너무 세상을 다 아는 척한다고 볼멘소리를 냈으나 저자 또한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이해하는 방식을 군데군데 흘려놓았다. 서로 화법만 달랐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라는 주어를 주로 쓰지만, 장강명은 ‘나’라는 주어를 주로 쓴다는 정도의 뭐 그런. 어쨌든 자기 생각이 옳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뉘앙스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모든 작가의 버릇이니까 나쁜 일도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게 없으면 글을 쓸 수도 없겠지. 게다가 나와 지향하는 바가 다른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저자의 말은 꽤 매력적이었다.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며 또 다른 억압을 만들어 내는 철부지들의 이야기나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건 결국 한계와 구속이라는 이야기 등등이 그러했다. 밥만 먹으면 심하게 졸리는 ‘병’도 누군가 세상에 언급해 줬다는 점에서 아주 반가웠다. 나도 그렇다. 제발 어느 의사든 교수든 연구원이든 이 식후 기면증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


 3박 5일간의 보라카이 여행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건, 다 읽고 나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문장은 쉽게 읽히지만 허투루 쓰인 것 같지는 않았다. 저자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11월의 서울 풍경과 재회하고 집안일을 하다가 푸드코트에서 돈가스를 먹는 장면에선 정말 나도 여행을 마친 후에 마음속에 번지는 어떤 현실감과 허무함을 복기하는 기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라기보다는 어느 소설가와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런저런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3박 5일의 여정도 그 화젯거리를 엉덩이에 깔고 앉는다면 조금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결혼에 관하여, 결혼에 절로 딸려오는 모든 허위와 족쇄에 관하여,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부부에 관하여, 가성비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 모두에 관하여, 나는 읽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처럼 보이는 보라카이까지 따라가서 그 이야기를 듣고 왔다. 소설가와 HJ가 가까운 시일 내에 코타키나발루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하롱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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