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르고트 Mar 31. 2017

치앙마이까지는 놀아보자고

조 인 옐로우Zoe in yellow 에서

 치앙마이에서 각국의 여행자를 만나보려면 구시가지의 밤을 헤는 것이 좋다. 님만해민에서 구시가지로 돌아왔으니 이제 ‘조 인 옐로우Zoe in yellow’에 갈 시간이었다. 조 인 옐로우는 오후 열 시만 넘어가면 사위가 잠잠해지는 사원, 박물관, 게스트하우스와 낡은 식당 거리 안에서 유일하게 빛과 소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한량처럼 가방도 들지 않고 밤 산책을 나서곤 했다. 조 인 옐로우를 비롯해 식당과 술집이 밀집한 블록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걸렸다. 밤 열 시를 막 지났을 뿐인데 이미 인적이 드물었다. 주인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는지 집이란 집은 모조리 불이 꺼져 있었다. 강대국의 대사가 거주할 것 같은 정원까지 딸린 저택 담장 안에선 행인을 향해 셰퍼드가 짖었다. 북을 두들기는 듯한 둔탁한 성대의 울림이 우리 뒤를 한참이나 쫓아왔다. 그러나 일단 조 인 옐로우 근처까지 가면 젊은 여행자들이 있고, 음악이 있었다. 그 소리를 (진부한 표현이지만) 심장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반찬은 나중에 몰아서 먹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조 인 옐로우의 스테이지에 곧장 합류하진 않았다. 대신 전초전 삼아 48 가라지Garage라는 바에서 버킷 가득 담아주는 생솜 하이볼을 마셨다. 48 가라지는 캠핑용 밴을 개조해 만든 카운터와 야외 테이블이 전부인 곳이었다. 하지만 자리 중간에 조명 장식을 설치하고 말끔한 옷을 입은 남자 종업원들이 서빙까지 해주니 지붕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모기가 극성이었지만 밤바람은 방콕보다 훨씬 시원해 야외에 눌어붙을 만했다. 시원한 초가을이 북쪽 어딘가에서 방향을 잘못 잡아 내 발치까지 와버린 모양이었다. 중국에서 온 여자 네 명이 술을 마시면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일본에서 온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맥주를 놓고 줄담배를 태웠다. 국적은 모를 민머리 백인 남성이 연인의 손을 잡고 있다가 금방 자리를 뜨는가 한편, 우리와 같은 목적이었는지 얼른 술잔을 비우고 조 인 옐로우로 옮겨가는 무리도 보였다. 길 건너편에는 구시가지 특유의 낡아빠진 이 층 건물과 밧줄을 연상케 하는 전선이 축 처져 있는 풍경이 그대로 있는데,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갑자기 유행의 한복판에 선 듯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흥미로운 대비였다. 버킷 한 사발에 기분 좋게 취해서 모든 것이 실제보다 더 나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보다 더 나은 세상을 보기 위해 술을 마시는 셈이니까 모든 일이 이치에 맞았다.


안타깝게도 밤에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질 않아 관련 사진이 없다.




 알딸딸한 상태로 조 인 옐로우로 이동했을 때, 스테이지는 이미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이곳 이름을 단 업장이 총 세 군데였는데 콘셉트는 서로 달랐다. 야외 테이블과 천장만 있는 라이브 스테이지를 갖춘 가든Garden. 실내에서 춤을 출 수 있는 펍Pub. 그리고 가장 얌전하게 술만 마실 수 있는 (한마디로 춤출 공간이 없는) 코너Corner. 이 정도면 구시가지의 대기업이라고 할 만했다. 가든과 펍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코너는 이름처럼 큰길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어서 둘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곳은 라이브 스테이지가 있는 가든 쪽이었다. 선풍기 몇 대 애달프게 돌아가는 몇 뙈기도 안 되는 공간에 온갖 인물들이 춤 한 번 춰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물론 그 안엔 정신을 놓은 우리도 있었다. 디귿자 카운터 주변에는 태국 젊은이들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이방인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야외 테이블과 라이브 스테이지의 경계엔 트랜스 여성들이 매일 같이 와서 몸을 흔들었고. 분명 올 땐 두 명이었는데 어깨동무를 하며 환호성을 지를 땐 예닐곱 명이 되어있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우리처럼 순박해 보이는 동양인들 - 한국이나 중국에서 온 게 분명한 - 도 있어 반가웠지만, 대체로 늘씬하고 도도하고 까무잡잡하게 탄 서양인들이 많았다. 한쪽 구석에서는 노부부가 시끄러운 노래가 나오든 말든 맥주를 마시며 세상을 달관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고, 한 남자가 내 팔뚝의 두 배는 될 법한 근육을 눈앞에서 흔들어대는 통에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누군가 외부에서 산 술을 들고 다가오면 득달같이 쫓아가 다 마시고 들어오라며 주의를 주는 보안 요원도 이 더운 날씨에 참 고생이다 싶었다. 머리 위로 불쑥 솟아올라 사진을 찍는 휴대전화와 그때 터지는 플래시도, 움직이는 일러스트 같은 요란한 문신도, 겉옷과 속옷의 경계가 이미 무너진 온갖 패션도 결국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조 인 옐로우 ‘펍’안에도 사람이 모였다.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고 펍과 가든의 사잇길에서 배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파티에 온 것처럼 맥주병을 들고 다니다가 불쑥 남의 대화에 끼어들고는 했다. 자정을 기점으로 현지 대학생들이 대거 나타났다. 대체로 서양인은 서양인끼리, 태국인은 태국인끼리 노는 분위기였는데 이도 저도 아닌 우리 같은 소수(?) 동양인들은 서로 잘 뭉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이틀째 되는 날 밤 진국을 만났으니 어느 일본인 가족(사실 그들이 가족은 아니었을 것이다)이었다. 우리와 동갑인 활발한 일본 청년 한 명과 이야기가 붙었는데, 그의 일행은 세 명의 여성이었다. 그중 두 분은 앳된 사십 대였고 한 분은 쉰 중반이 넘어 보였다. 주인공은 바로 마지막 그분이었다.


 어머니까지는 아니어도 막내 이모뻘 정도는 되는 것 같으니 그녀를 작은 여사님이라 부르기로 하자. 작은 여사님은 청년의 손에 이끌려 스테이지 위에 올랐다가 세찬 음악 소리에 한 방 크게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나와 D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이들(주로 남자)과 돌아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단순히 취흥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박력이었다. 젊은 서양 친구들도 처음엔 당황하다가, 나중엔 웃다가, 결국엔 엄지를 추켜올리며 여사님과 어울렸다.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서서 발을 차며 추는 춤이 아이돌 그룹도 울고 갈 이 동네 최고의 군무였는데, 여사님은 틈만 나면 대오를 이탈해 중앙에 서려 했다. 작은 여사님의 정열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누가 그녀처럼 춤을 출 수 있겠느냐는 놀라움으로 접근해야 한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 이 음악’에 몰입한 춤사위는 여행 기간 통틀어 목격한 수많은 춤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했다. 한두 시간 후 스테이지를 종횡무진 하는 작은 여사님을 보전하기 위해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다니는 일본인 청년을 보았을 때는 그래도 자중의 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은 사모님만큼은 아니지만 누가 봐주지 않아도 열심히 춤을 추던 우리에게 종종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어오는 치앙마이 대학생들이 있었다. 태국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꽤 두터운 팬 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에겐 「셔터」같은 공포물로 알려진 태국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의 2010년작 「Hello, stranger」라는 작품은 아예 배경이 한국이었다. 이 영화가 태국 내에서 흥행한 덕분에 한때 한국을 찾는 태국 관광객이 늘기도 했단다. 결국 태국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손꼽히고, 한류의 거품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문화가 동남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진 건 사실이니, 우린 서로 친근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밤의 구시가지 클럽에서 한국인 만나기가 쉬운 일도 아니었다. 우리도 이틀 동안 네 명 본 게 전부다. ‘희소가치가 있는 것들’을 만났음에 신이 난 그들은 우리와 어울려 춤을 추고 마시던 맥주를 권하기도 했다. 태국 젊은이들이 (워낙 자주 봐서 식상하기 때문인지) 외국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부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여행을 가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거나 심지어 외모나 언어를 통해 국적을 알아맞히는 이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내가 그들의 언어를 알 거나 그들이 우리말을 알아도 이 또한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사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서로에게 웃음을 허락하기로 했다면, 잠깐 스치는 인연에서 그것 말고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새벽 두 시까지 쉬지 않고 놀았고, 새벽 두 시가 되자 조 인 옐로우는 칼같이 조명과 믹서를 끄고 영업을 마쳤다. 주말엔 첫새벽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 비하면 얼마나 건전한 세상인지 모른다.





 갈 곳을 잃은 다국적 도락가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친구의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향했고, 삼삼오오는 어둑한 골목길로 걸어서 사라졌다. 기분을 언짢게 했는지 친구와 냉랭한 목소리로 싸우는 여자도 있었다. 물론 잔뜩 취해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도 한둘 정도 보였다.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파 케밥이나 핫도그를 사 먹곤 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포장지까지 씹어 먹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한 배고픔이었는지 술과 음악, 춤과 사람에 대한 갈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총합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헛헛함이겠거니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나와 D는 여흥을 이기지 못하고 날듯 뛰듯 걸었다. 그러다가 술집과 숙소 중간쯤 있는 삼왕상三王像앞에서 D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치앙마이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이 입상의 주인공들은 13세기에 태국 땅에 할거했던 란나, 수코타이, 그리고 파타오 왕국의 국왕이다. 가운데 선 남자가 란나 왕국의 초대 국왕인 멩그라이인데, 치앙마이로 도읍을 옮길 때 셋이 힘을 합쳐 도시를 건설했다는 우정의 역사를 기리기 위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삼왕상의 미는 남성미에 있었다.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D가 그 앞에 맨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하기 시작했다. 대극장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머리를 땅에 묻었다가 양팔을 하늘로 쳐들었다. 아무도 없는 한밤의 공원에서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래도 옛 왕국의 위대한 영혼께서 D의 축원을 들어줬는지 여행이 끝날 때까지 크게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주사酒邪를 삼가야 마땅하지만, 여행 중 마시는 술은 사람을 퍽 들뜨게 만드니 그것참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치앙마이까지는 즐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엄밀히 말하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우리를 놔두기로 하지 않았던가. 어두운 공원 한복판에 취한 채로 서서 이것도 다짐이라면 다짐인데 잘하고 있지 않으냐며, 나는 어슬어슬한 정신으로 만족해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수 같은 그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