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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Aug 20. 2016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녁을 해결하려고 들어간 뼈해장국 집에서 쌈장의 다진마늘을 골라먹다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방금 먹은 고추가 뒤늦게 효과를 발휘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었고, 이게 다진마늘 때문은 아닐 거라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청양고추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딱히 냉장고에서 꺼내고 싶은 반찬이 없을 때면 청양고추를 한손에 들곤 했다. 한동안 매운 고추를 먹어보진 못했다. 저보다 더 크고 두꺼운 오이가 부러웠던지 그들은 오이를 얇게 저며 딱딱하게 굳힌 듯한 맛으로 대동단결했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지만, 내게는 반찬 없이도 그릇에 쌓인 밥을 해결하게끔 해 주는 매서운 효과가 필요했다. 그런데 오늘, 뼈해장국집 밑반찬으로 나온 고추가 절로 내 자세를 곧추세우게 하며, 야, 이놈 봐라, 제대로 힘을 쓰는 구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이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 제목만 떠다니던 이 글을 쓰게 한 것도 이 고추의 힘이었다. 지금까지 읽고 앞으로도 읽을 책은 각자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 정신(때로는 영혼)을 번쩍 들게 하는 작품은 과연 이 매운 고추를 닮지 않았느냐고, 나는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기어코 그렇게 이 글을 시작하고 말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행여 내가 등단한 작가라고 생각할 이는 없을 테지만, 어쨌든 뭐라도 쓰는 사람인 건 맞으니 나는 그에 관한 글을 여기에 쓰고자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은 써야겠는데 무엇을 써야할지 난감하여 결국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는 그 상태를 소설로 썼다고 하던가. 나도 마땅히 여기에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으니 그냥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하는 게 틀린 일은 아닐 것이다. 원고는, 아니, 문서 파일은 쌓여가는데 도대체 내가 쓰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나는 아직도 궁리하는 중이다. 일기장이든 블로그든 그곳은 실험의 장이고, 때로는 다음 실험을 위한 귀중한 데이터를 얻기도 한다. 굳이 고만고만한 고추 중에서 매운 고추를 찾는 식탁 위의 여정을 (고추보다는 소중한) 이런저런 작품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을 발견하는 책장 안의 여정으로 연결시킨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어떤 수사법으로서의 가치도 없는 무리수일지언정 어쨌든 문장으로 써보지 않으면 그게 무리수인지 읽을 수 없으니까. 그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문장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글이 아니니까.


 마땅히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소재는 없고, 제목에 "산다는 것"이라는 단서가 붙으니 주제의 영역도 멋대로 넓힐 수 있으며, 따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흰 쥐가 필요한 실험도 아니니까 이만하면 써레질은 된 것 같다.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이 새마을 희망찬가 마냥 쓴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허나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진짜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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