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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Apr 24. 2017

국경이 가까워 지며

나는 그 세상을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여행사에서 알려준 픽업 시간은 오전 열 시였지만, 십오 분이 지나도 개 한 마리 찾아오지 않았다. 하품은 하품대로 나왔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사람 좋아 보이던 여행사 커플(과 그들의 삽살개)에게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면, 오늘은 치앙마이를 떠나 태국과 라오스 국경 마을인 치앙콩까지 가는 날이다. 한 줄 문장을 읽는 것과 실제로 그 문장대로 움직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누군가 내게 “오늘 어디로 가?”라고 묻는다면 몇 번이고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겠지만, 정작 내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여전히 술은 깨지 않고 머리는 무겁고 목은 마른 가운데, 가슴만 두근거리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오 분 후에도 오지 않으면 여행사를 찾아가겠어.”


 D가 분연히 일어나고 딱 사 분이 지나자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이 우리를 찾으러 왔다. 기다리던 밴이 왔다고 했다. 부랴부랴 그를 따라 나가 D는 차에 짐을 싣고,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뒀던 보증금을 찾았다. 밴, 이곳에선 미니버스라고도 불리는 승합차에는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커플과 남미에서 온 남자와 여자(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가 타고 있었다. 그들과 반가운 목소리로, 그러나 다분히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맨 뒷자리로 향했다.

 현지에서 예약하는 대부분의 여행 프로그램이 한곳에 모여 함께 출발하는 게 아니라 예약자의 숙소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픽업을 하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후 우리는 이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아무렇지 않게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발휘하고는 했다. 오로지 딱 한 곳,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픽업 차량이 칼 같이 시간을 지켜 나타나는 바람에 오히려 당황한 적이 있다. 아니다. 아직 그 이야기를 하기는 이르니까 일단 밴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밴은 골목을 빙빙 돌더니 영국에서 온 여자와 독일에서 온 커플을 마저 태우고 시가지를 벗어났다. 구시가지와 님만해민 외엔 가보지 않았던 우리에게 생소한 치앙마이가 나타났다. 그렇게 이 아름다운 도시는 뒤로, 다시 뒤로 멀어졌다.





 밴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치앙마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위에의 풍경도 따라서 흔들렸다. 나지막한 녹색 밭과 지평선 끄트머리에 주저앉은 산이 도장을 찍듯 반복해서 나타났다. 가끔 작은 마을들이 알몸을 보이다가 감추기도 했다. 그 마을 안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데 모여 땅 밑을 탐색하는 아이들, 줄지어 마당을 도는 바싹 마른 닭 몇 마리, 팔로 눈을 가리고 마루 위에서 잠든 남자, 그늘이 져 잘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과거를 보고 있는 노인을 보았을 뿐이다. 한가롭고 의문이 없으며 의미가 없다는 의미가 있는 삶의 씨앗들. 나는 마치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듯 금방 풍경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아주 가끔만 시선을 주었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길고 긴 고향을 보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와 목이 결릴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꿈결에 내가 지금 창밖을 보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눈을 뜨니 치앙라이 주로 넘어와 있었다. 차는 정오 즈음에 한 번 멈췄다. 당시에는 도대체 어디께인지 알 수 없었던 생뚱맞은 장소에 ‘풀 하우스’라는 리조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흐리멍덩한 정신에 너무 생경했던 나머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이곳에 정차한 이유는 명백했다. 점심시간이었다. 리조트라는 간판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으리으리한 건물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적당한 면적 안에 식당이며 방갈로며 수영장이 모여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휴양지에 뒤처지지 않았다. 곳곳에 설치된 큼지막한 조형물이 정원 사이로 난 길을 장식했고, 식당 뒤편에 우거진 야자수는 그 너머에 해변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카페를 겸하는 식당 안에는 오륙십 년대 재즈와 블루스가 흘렀다. 알록달록한 소파에 앉아 책과 소품이 가득 진열된 선반을 둘러보았다. 사람 마음이 절로 투명해지는 곳이었다. 뒤편 방갈로에서 짐을 들고 나온 투숙객들이 처음 보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다녔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있던 공동체에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꿈이라 믿겨질 만큼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고, 성급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행복해 보였다. 나는 가장 무난한 볶음밥과 아이스커피를 주문한 후 잠시나마 이곳 분위기에 녹아들어 보려고 애를 썼다.


 자리가 협소해 함께 밴을 타고 온 일행과 한 탁자에 둘러앉았다. 처음 차에 오를 때부터 인상적이었던 사십 대 여자와 남자는 주변 모든 이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중이었다. 그들은 D의 옆에 앉은 훤칠한 브라질 출신 청년과 이야기하다가 이번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카스텔라 표면처럼 짙은 갈색 피부에 에스닉한 장신구를 줄줄이 달고 있어서 남미에서 왔나 싶었던 여자는 알고 보니 태국인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치앙마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경력도 있다고 했다. 굉장히 정력적이고 수다스러운 그녀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자신의 한국 이름이 ‘대장금’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장금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서 진짜 이름을 물어보니 ‘똠’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그 이름이 그렇게 외우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연인은 ‘브아송’이라고 했다.



 브아송은 프랑스인이었다. 얼마나 빼빼 말랐는지 불쏘시개로 쓰는 잔가지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티셔츠 안에 차고 있어 면 위로 두툼하게 튀어나온 전대가 꼭 그의 갈비뼈 같기도 했다. 여행 중 만난 국적이나 인종이 다른 연인들이 그러하듯 두 사람의 인연 역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은 소재였다.


 일단 똠과 브아송은 부부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고향에 살며, 휴가를 맞아 태국으로 온 브아송이 똠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이 관계가 한두 해 이어진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는 조금 더 나중에 듣게 된다. 당장은 이 두 사람 괜찮을까, 걱정부터 앞섰는데, 술이든 약이든 뭔가에 취해있는 것처럼 어수룩한 브아송의 행동거지 때문이었다. 아마 그날은 전날 마신 술 때문이었을 뿐, 그가 똠 이상으로 유쾌하고 오지랖이 넓은 인물임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중의 일이다.


 삼십 여분 가량 주어진 식사 시간 동안 나와 D는 얼른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단체 여행이라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길을 헤매고 있지도 않은 이 일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바퀴 돌아본 ‘풀하우스’ 리조트는 다시는 이곳에 올 기회는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어쩐지 슬퍼 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책을 읽었다. 『길 위에서』의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는 미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희한한 모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꿈꿔보았다. 벽처럼 가파른 언덕과 그곳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보헤미안들이 모여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낡아빠진 아파트 안을. 몸은 치앙라이에 있는데 내게는 샌프란시스코의 안개가 보이는 것 같았다. 느닷없이 그곳에 몹시 가고 싶어졌다. 원래 우리가 갔어야 할 땅이 광활한 북미 대륙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곳이 성에 차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선망했던, 적지 않은 여행수기에서 읽을 수 있는 “여행 중 또 다른 여행을 꿈꿨다”는 작가들의 문장은 단순히 현재가 불충분하다는 심리에서 나온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 곳곳에, 저마다 다른 문화와 인종과 풍경으로 채워진 곳곳에 동시에 존재하고 싶은 소망, 바람이나 구름처럼 거의 물리적인 형태를 탈피한 존재가 되어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는 실현 불가능한 미몽迷夢에서 나온 말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나는 그 문장을 그렇게 쓰고 싶었다.



 처음 보는 세상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나는 그 세상을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시 모르는 세상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모르는 것을, 보지 못한 곳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마음은 어떻게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까. 상상이라는 표현을 몇 번씩 썼지만, 어쩌면 만듦이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멀미 때문이 아니었다. 태국의 북쪽에서 미국의 서쪽, 유럽의 동쪽, 때로는 유라시아의 북쪽과 태평양의 남쪽을 꿈꾸는 일이 감정의 과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아마 잠이 부족한 탓일 거라고, 나는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이 덜컹거리는 버스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이미 그러리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가능성 없는 일에 희망을 거는 것처럼 나는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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