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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Aug 01. 2017

여름이 간다고 말하기 좋은 계절

NE Alberta St, Portland, OR.

 여름이 간다고 말하기에 좋은 계절은 여름이다. 몇 주 째 이어진 더위는 정점을 지나 뒷산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높고 굽이친 우리집 뒷산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먹다 남긴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나는 하강의 속도로 바람을 맞았다. 여름이 가고 있구나, 더위가 다시 몇 주를 이어진다 하더라도 문득 여름은 과거형으로 쓰인 당신의 문장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름이 간다고 말하기에 좋은 밤이었다.


 5월이었던 그곳엔 여름이 일찍 찾아왔었다. 우리 말에 없는 시제를 골라야 할 만큼 그곳의 계절은 뒤죽박죽이었다. 여름은 놀러왔다가 돌아가고 돌아가다가 다시 머뭇거렸다. 더워서 에어컨을 틀다가 어느 날은 아이의 목에 수건을 둘러주어야 했다. 아내는 몸을 떨었고, 나는 입었던 스웨터를 다시 입었다. 빨래는 양말 몇 켤레와 속옷 몇 벌로 퉁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곳에 여름이 일찍 찾아왔다는 말은 그곳의 해가 느즈막히 졌다는 말이다. 시계가 고장난 것은 아니었다. 여덟 시에 노을이 지고 아홉 시에 별이 뜨기 시작했다. 감청색 어둠은 그 사이 어딘가에 깔렸다. 허나 해가 지지 않는데도 바람은 내가 주차장을 걸으며 맞을 바람처럼 서늘했다. 그러면 거리가 숨을 죽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맞아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넜다. 등대처럼 무해한 빛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동차는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내린 어둠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뻔했지, 외로움이란 낙서가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는 여름이 간다고 느낄 때 가을을 생각하고, 가을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바람이 불어나온다. 밤이 길어지는 만큼 바람도 실타래처럼 뽑아져 나온다. 빈 자리가 허전해지다가 이윽고 시도때도 없이 서글퍼진다. 새벽은 새벽 같아서 슬프고 아침은 아침처럼 빛나서 처절하다. 한낮은 정수리 위에 무겁게 주저앉는다. 해 질 녘은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을 후빈다.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라 숨을 돌렸다. 그랬다면 나도 헤드라이트 불빛을 쬐며 길을 건넜을 것이다. 어깨를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 빛도 어둠도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여름이 자꾸 들락날락해서 그렇게 낮은 목소리처럼 걷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맥주잔을 기울였다. 음식물쓰레기 통을 열어 다 소화하지 못한 것들을 털어넣는다. 나는 나지막한 건물 위로 구멍처럼 떠 있는 구름을 보았다. 주차장을 되돌아 오는데 빈자리를 찾지 못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나를 쪼고 지나간다. 나는 마음이 퍽 괜찮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지나간 후 길을 건넜고, 붉은 미등은 그림자처럼 어둠에 묻혔다. 여름이 들락날락하던 그곳을 생각하다가 우리집 뒷산을 붉게 물들이며 올 다음 계절을 그려본다. 그곳 사람들의 가슴에 난 바람의 통로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리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곳의 여름은 그곳보다 정직하지만, 아홉 시가 되어도 여기 하늘엔 별이 뜨지 않는다. 그때 나는 지독한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지금 나는 하릴없이 여름이 간다고 말한다.


NE Alberta St, Portlad,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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