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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Mar 30. 2019

아무도 축포를 터트리지 않는다

퇴고를 마쳤다

 1년 동안 읽은 책과 들었던 음악을 늘어놓자 그 이전의 1년 동안 읽고 들은 목록과 다를 게 없었다. 소설, 에세이, 여행서, 인문서 몇 권. 팝, 록, 클래식, 일레트로닉, 발라드 몇 곡. 리스트를 만들자 글을 쓰며 배경이 되어 준 책과 음악이 각 장과 연결 지어졌다. 이 정도일 뿐이군, 사람은 똑같은데 책 한 권 썼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가장 인상 깊은 문장과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꼽아 보았다. 후자는 오아시스의 ⟨Whatever⟩였다. 2장을 쓰는 데 한 달 반이 걸렸는데, 2장을 쓰면서도, 한 달 동안 쓰던 걸 엎고 11장에 새로 쓰면서도 내내 그 곡을 들었다. 반면 문장을 고르기는 어려웠다. 제임스 설터일까, 김애란일까.


“진실은 중요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제임스 설터, 「귀고리」)


 내가 원하지 않는 진실은 내가 쓴 글에 관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쏟아져 나오는 책들 사이에서 어떤 의의가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1년이 지나갔다.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쓰지도 않을 물건을 잔뜩 사 온 저녁 같다.



 새 계절은 개의치 않고 왔다. 1년 동안 쓴 책이 여행서였으니 비슷한 글은 한동안 쓰고 싶지 않다. 대신 책과 음악 취향이 거의 바뀌지 않는 한 사람에게서 벗어난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 8년째 같은 노트북에 같은 앱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채워질 백지만큼은 보다 멀리 보내고 싶다. 이 안에는 더 깊어질 만한 수렁이 있다.


“친구가 오면 도청하는 경찰이 들어도 괜찮은 말만 하다가, 자기가 지은 시 몇 줄을 담배 마는 종이에 적어서 들고 있었어. 친구가 읽고 외울 수 있도록.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면 성냥을 켜서 그 종이를 불태웠어.”(제임스 설터, 『올 댓 이즈)』)


 아무도 축포를 터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쓰게 될 것은 쓰여진다. 써야 하는 것은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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